극사실작가 이석주 ‘사유적 공간’ 주제로 개인전… “세월의 흐름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그려요”
입력 2010-06-15 21:15
초현실적인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사유적 공간’을 펼쳐내는 이석주(58·숙명여대 회화과 교수)의 작업실(경기도 남양주) 앞쪽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에는 해발 600m쯤 되는 고등산이 있다. 매일같이 작업실에 출근하는 작가는 강과 산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하는 시계와 말(馬)의 이미지는 자연에서 발견한 시간의 의미를 도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1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에 시계와 말 대신 구겨지고 찢어진 종이와 손때 묻은 낡은 책,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등 명화 속 여인을 등장시켰다.
“말과 시계를 즐겨 그리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숱한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시도를 했지요. 젊을 때는 그로테스크하고 고뇌에 찬 그림도 그렸는데 나이를 먹으니 점점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가요. 고서적이나 명화 속 여인들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제 그림의 테마인 유한한 시간성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1970∼80년대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는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사진같은 그림에 대해 한마디 했다. “상업성을 좇는 것이 마치 ‘폭풍의 언덕’ 같아요. 이것도 한 때의 유행이겠죠. 극사실에서는 정밀하게 그리면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데 정밀 묘사는 방법적인 문제지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5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사유적 공간’을 주제로 헌책, 명화, 하늘, 구름, 꽃 등을 통해 다양한 삶의 표정을 담은 신작 30여점을 선보인다.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허허로움을 표현한 것도 있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깃든 공간을 그린 것도 있다. 작가는 이런 작품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는 연극배우 겸 연출가 이해랑(1916∼1989)의 셋째아들이자 예쁜 인형그림으로 잘 알려진 이사라(31)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생전의 아버지는 늘 자신의 첫 무대를 봐달라고 하셨어요. 첫 인상이 중요하니까요. 저도 관람객들에게 좋은 첫 인상을 남기고 싶어요. 딸은 젊은 작가답게 재미있게 작업하는 것을 보면 가끔 질투가 나요.”(02-734-0458).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