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강 (12) 내 인생 등불이 돼 준 ESF… 그 멤버들 평생 못 잊을 것
입력 2010-06-16 13:24
기독대학인회(ESF)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해줬다. 이 사회에 대해, 역사에 대해, 바른 신앙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울려 사는 삶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 선교단체다. 나는 그곳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더벅머리 김회권(숭실대 기독학과 교수) 목자님은 내 인생의 구세주였다. 나는 그로부터 기독교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고민하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의 자리에서 복음적 해결책을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는 나에게 전인격적인, 초 인류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었던 영성과 열정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본이 되었다.
그는 탁월한 성경해석과 해박한 지식, 개인의 삶에서부터 시대와 역사까지 분별하는 폭넓은 시각으로 복음주의의 한계를 넘어 사회의 치유에까지 뻗치는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해 그 당시를 살던 젊은이들의 가슴과 영혼을 달구었다. 66㎡(20평) 남짓한 작은 회관에서 우리는 복음을 들고 개인과 시대의 문제를 고민한 끝에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용사들로 거듭났다. 회관에는 항상 자신의 문제든지, 구조의 문제든지, 모든 진리에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넘쳤다.
같은 시기에 회관에 있었던 형제 자매들 중 강학 해문 선 정국 정희 남권 윤희 원규 동규 은영 등이 생각난다. 또한 호태 달식 만수형 등은 우리의 좋은 본이 되었다. 강학, 정국형제와 정희자매는 학생복음사역의 역사를 계승하려 간사로 섬겼다.
윤희 누나는 특히 남을 돕는 일에 은사가 있어 후에 독일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지금도 장애우와 노인들을 돕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강학, 정국, 정희 형제자매는 훗날의 복음 사역을 위해 지금은 다 유학 중이다.
이제는 모두 40대로 엄마 아빠가 되었지만, 이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그 최루탄 냄새 자욱한 신림동의 좁은 건물에서 성경공부하며 진리에 목말라 했던 그 시절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때 내가 특히 많이 도와주었던 칠성이와 현영이는 지금은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궁금하다. 칠성이는 대전의 연구소에 근무하고 현영이는 결혼해 서울근교에 산다는 말만 들었다. 칠성이는 농대에 입학했던 시골아이였다. 순박해 보이는 그를 나는 형처럼 돌봐 주었다. 밥도 사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성경도 읽으며 그가 견실한 대학생으로, 신앙인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를 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기었다. 그는 화학을 좋아해서 후에 다른 학교에 편입시험을 봐 학교를 옮겼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박사과정을 하러 다시 서울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제는 교수와 학생의 신분으로 만났지만,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 미래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하였다. 첫아이를 잃었던 슬픈 이야기부터, 이제는 건강한 아이와 아내와 함께 성실히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는 신앙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였다. 항상 외로워했고 눈물이 많았던 현영이는 너무나 연약해보여 안쓰러웠지만 약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 많은 이들의 걱정을 덜어줬다.
우리는 서로가 삶의 힘과 추진력을 얻도록 성경공부와 기도와 토론을 많이 했다. 혼자서 넘을 수 없었던 수많은 고비와 산을 우리는 함께 넘었다. 지금도 캠퍼스에는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고 외로워하며 절망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나는 매일 밤 그들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