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라운드에서도 승리의 골 넣자”… 한국축구대표팀 승전보에 ‘월드컵 설교’ 만발

입력 2010-06-14 18:57


지난 토요일 밤의 남아공발 승전보는 다음날 전국 주일예배 설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목회자들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주일예배 설교를 월드컵 이야기로 시작했다. 물론 제목이나 주제는 모두 달랐지만 목회자들은 설교 초두에 덕담과 같이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남아공 현지에서 한국 대표팀 소속 크리스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이영무(할렐루야축구단 감독) 목사가 전화로 특별기도를 부탁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설교를 시작했다. 김 목사는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가장 큰 적은 불안감이라고 한다”며 “실체 없는 불안감이 우리 선수들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해 열심히 중보 기도하자”고 말했다.

2개월여 만에 강단에 선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월드컵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내가 경기 전에 ‘2대 0으로 우리 팀이 이긴다’고 한 그대로 됐다”며 “한국팀이 비록 실력으로는 힘겹지만 은혜를 받으면 4강까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목사는 또 “요즘 우리나라가 많이 분열돼 있는데 축구를 통해 하나될 수 있기 바란다”며 월드컵을 통한 사회 통합을 기원했다.

대전중문침례교회 장경동 목사는 주일예배 설교에서 “한국팀이 그리스전의 통쾌한 승리로 우리 민족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안겨 줬다”며 “신앙생활도 응원하듯 한마음으로 한다면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목사는 “이번에 뛰는 선수들은 개인의 몸을 떠나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 국민들을 더욱 기쁘게 해 주기 바란다”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헤브론축구선교회 대표 류영수 목사는 주일예배 설교에서 이번 그리스전을 성경적 원리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류 목사는 감독과 선수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이긴다’(수 14장)는 갈렙과 여호수아의 정신으로 싸움에 임해 거뜬히 승리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리스팀은 망대를 지으려는 사람은 비용을 계산해보고 시작해야 한다는 ‘예수님 망대의 원리’(눅 14:28)와는 다른 길로 갔기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현감리교회 조경열 목사는 주일예배 설교에서 아예 두 팔을 번쩍 치켜든 뒤 “우리 대∼한민국 한번 할까요?”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성도들은 환히 웃으며 “예”라고 답했지만 조 목사는 “강단에서 대∼한민국 하는 건 좀 그렇지요. 우리 8강에 올라가면 정말로 합시다”라며 자제했다. 조 목사는 “언젠가 차범근 감독이 선수들에게 ‘눈으로 재서 차지 말고 감각으로 차라’고 했는데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동일하다”며 “교리적으로 이것 재고 저것 재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각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설교 강단에 월드컵 열기가 그대로 옮겨진 듯한 현상에 대해 정인교(한국설교학회장) 서울신대 교수는 “월드컵이 온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은 현 상황에서 텍스트(성경)와 콘텍스트(상황)를 연결해야 하는 설교자들은 결코 강단에서 월드컵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월드컵은 존재나 생존, 선악 등 주요한 이슈가 아니라 한때 우리를 즐겁게도, 우울하게도 할 수 있는 가십성 사건인 점을 설교자들은 명심해야 한다”면서 “복음 증거라는 설교 본연의 역할을 위해 도입부나 종결부 예화 정도로 가볍고 유쾌하게 사용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유영대 김성원 백상현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