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폭락에 조폭·사채업자 개입설… 쌀 시장 ‘뒤숭숭’
입력 2010-06-14 21:24
쌀 시장이 복마전이다. 카드깡에다 조직폭력배와 사채업자 개입설까지 나돈다. 정부는 수급 조절을 위해 쌀을 사들이고 대형 마트들의 쌀값 할인행사까지 막고 나섰지만 쌀값의 하락 추세는 여전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비정상적인 쌀 유통시장에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을 강구 중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4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쌀값 하락 및 수급 불안 대책으로 시중 유통물량 중 쌀 20만t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달 5일 현재 쌀값(5일 기준)은 전달 25일보다 0.5%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달 초 현재 전국 산지 미곡종합처리장(RPC)의 평균 쌀 출하가격은 80㎏짜리가 13만4348원이다. 농민들은 “창고에 가득 찬 나락을 보면 마음이 든든했었는데 이제는 ‘징글징글하다’”고 푸념한다.
쌀값은 2008년 가을 이후 줄곧 하락세였다. 보통 가을철 수확기가 지나고 단경기인 봄에는 쌀값이 오르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 산지마다 재고량이 지난해에 비해 10∼30% 늘었고, 올해 재고량은 14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최근 대형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할인행사를 자제토록 요청하기도 했다. 시장 격리에도 쌀값이 안정세에 접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유통업체가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할인행사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유통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RPC에 쌀을 싼 값에 공급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가격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쌀 재고량이 남아도는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업체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대형 마트에서 20㎏짜리 쌀은 3만2000∼3만3000원대에 팔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RPC와 도매상 사이에선 쌀값 하락 원인이 폭력조직과 사채업자들의 ‘농간’ 때문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폭력조직과 사채업자들이 신용카드로 산지 RPC에서 쌀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시중 유통업체에 구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되팔아 현금화하고, 이를 종잣돈 삼아 사채업을 벌여 적지 않은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쌀값이 낮을 때 카드로 1000만원어치 쌀을 구입한 뒤 시중가격이 높아질 때를 기다려 대형 슈퍼마켓이나 소매상에 이른바 ‘깡’ 방식으로 900만원 정도에 되판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을 사채시장에 돌려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챙긴다는 것.
이 같은 내용의 첩보가 농식품부에 접수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관련 부서는 14일 해명자료를 내고 “일부에서 대형 유통업체의 쌀 할인판매, 쌀 카드깡을 쌀값 하락의 한 요인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조폭·사채업자가 관련된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유통업체들은 카드깡 거래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조폭 개입설에 대해서는 “글쎄요”라며 언급을 회피했다. 송림미곡 관계자는 “카드로 쌀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시장에 싸게 내다팔아 현금을 확보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쌀이 구조적인 공급 과잉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이은 풍작과 쌀 소비량 감소, 의무수입물량 증가 등 만성적인 공급 과잉에 대응하는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쌀값이 떨어질 때마다 농민들에게 선심 쓰듯 10만∼20만t씩 사들이는 미봉책으로는 쌀값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