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채권 러브콜’ 왜?… 환율 치솟아도 일편단심 순매수 행진

입력 2010-06-14 18:10


지난달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사고 원인은 북한 어뢰라고 발표하자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코스피지수가 전일 대비 29.9포인트 빠진 1600.18까지 추락했다. 원화가치는 폭락(환율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은 29원이나 오르면서 1194.1원에 이르렀다.



증시와 외환시장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안 금융당국은 채권시장 동향에 더 촉각을 곤두세웠다. 외국인이 국내 채권을 사는지, 파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오후 들어 확신이 들자 금융위원회는 “천안함 사태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자료를 냈다. 금융당국에 안도감을 준 것은 외국인 채권 순매수세였다. 이날 외국인은 2524억원을 순매수했다.

지난 7일 헝가리발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도 금융당국의 시선은 채권시장으로 쏠렸다. 환율이 34.1원이나 치솟았지만 외국인이 채권 43260억원을 순매수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미터’가 된 채권시장=최근 금융당국이 채권시장 동향에 가슴을 졸이는 것은 외국인이 우리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바로미터(잣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증시와 외환시장은 대내외 변수에 심하게 휘둘리는 상황이라 외국인이 채권시장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달까지 외국인이 우리 채권시장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83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달에도 외국인은 지난 11일까지 2조1739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채권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9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지난달 외국인의 국채 순매수 비중은 46.6%로 지난 4월 36.9%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인이 우리 채권시장에서 순매수 행진을 접고 매도로 돌아선다면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본다는 신호인 동시에 안보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재미있는 현상은 최근 환율이 급등하는데도 외국인 채권 순매수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환율 올라도 산다=일반적으로 환율이 급등하거나 오름세를 타면 외국인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발을 뺀다. 단순하게 보면 1달러를 투자해 채권 1100원어치를 샀는데 환율이 계속 오르면 팔아봐야 1달러도 못 건지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매수세에는 상당부분 재정거래(금리 차이나 환율 차이를 이용한 거래)가 포함돼 있어 환율에 민감하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달러를 빌려 원화로 환전해 채권에 투자할 경우 국내외 금리 차이를 이용한 차익을 얻는다. 여기에 환율 하락 흐름이 이어지면 막대한 환차익까지 거둔다.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이 준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의 움직임은 환율과 무관하다. 4월 30일 1108.4원이었던 환율이 한 달 동안 100원 가까이 올라 지난달 31일 1202.5원으로 장을 마쳤지만 외국인은 우리 채권시장에서 8조8500억원을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이유를 안전자산 선호현상에서 찾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으로 돈이 이동하면서 채권 투자도 안전한 국가 채권으로 포트폴리오가 재편되고 있는 분석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종연 채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안전자산은 금과 주요 선진국의 채권이었지만 지금은 금과 미국 국채를 제외하면 안전자산으로 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아시아 국가 가운데 우리처럼 경제 성장률이 높고 재정 상태가 건전한 국가의 채권에 투자 비중을 늘리는 글로벌 채권 포트폴리오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신흥국 통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한몫을 하고 있다. 당장은 원화 가치가 떨어져도 결국에는 상향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리 채권을 사두면 나중에 막대한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저가 매수’ 기회인 셈이다.

금융위원회 정은보 금융정책국장은 “외국인 채권 투자자들이 대부분 롤오버를 하고 있고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결국 거시지표와 실물경제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