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쓰리’ 출간 맞춰 방한 日 소설가 나카무라
입력 2010-06-14 21:18
“소매치기는 인류 역사에서 매춘 다음으로 오래된 직업이라는 걸 어느 문헌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매치기를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일본의 인기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33)가 신작 장편 ‘쓰리’(자음과모음)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나카무라는 2002년 신초 신인상, 2004년 노마 문예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흙 속의 아이’로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거머쥐는 등 일본에서 촉망받는 작가다.
14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나카무라는 “부자들만 골라 쓰리하는 소매치기의 이야기를 써보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쓰리’는 도쿄를 무대로 활동하는 천재 소매치기 ‘니시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절대 악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인간의 운명을 그린 작품으로, 올해 오에 겐자부로상 수상작이다.
그는 소매치기 기술과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소매치기에 관한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그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친구를 대상으로 소매치기하는 연습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손끝의 감각을 느꼈고, 이런 체험을 문장으로 옮겼지요.”
소설 속 주인공 니시무라는 소매치기 기술로 인해 돈 걱정이 없고 세상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기자키’라는 악의 화신을 만나 자유를 뺏기고 그가 지시한 일을 수행하지만 결국 버림받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린다.
그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룰(rule)을 정하는 측과 룰을 부수는 측이 있다. 모든 사람이 룰을 지키면 세상이 평화롭겠지만 사람은 룰을 부술 때 쾌감을 느끼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면서 “룰을 부수면서 또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소매치기를 통해 인간의 운명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한국 소설에도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김인숙 공지영 하성란씨 등의 단편을 묶은 일본어판 한국여성작가단편선집을 가방에서 꺼내 보이며 “요즘 읽고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조경란과 이승우의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문학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특별히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김애란씨 소설을 일본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미국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을 겁니다.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장르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일본에서는 순수문학과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구분이 많이 사라졌다”면서 “문학적 깊이가 있으면서도 재미가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독자들이 읽고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