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의사양성 학제의 딜레마

입력 2010-06-14 21:16


“처음엔 나도 그 취지에 공감했다. 그러나 점차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업 분위기가 학부 때보다 진지해졌으며 학습능력에도 차이가 없다. 연구 의욕도 커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전공의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 사안을 놓고 이렇게 시각이 다를 수 있을까. 바로 시행 6년째의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제도 폐지 여부에 관한 주장들이다. 논란의 핵심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2+4학제’와 ‘4+4학제’ 중 뭐가 더 바람직한가이다.

의료계와 교육계는 지금, 이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판세는 2+4학제의 기존 의대 체제로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이 4+4학제의 의전원 체제를 지지하는 쪽보다 약 7대 3의 비율로 우세한 듯하다.

교과부는 지난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반강제적으로 시행된 의전원 선택권을 각 대학에 일임한다는 방침을 사실상 확정, 이달 안에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양한 학부 학생들에게 의대를 개방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의전원이 일부 기존 의대의 반발과 이공계 교육의 파행 등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현 정부가 뒤늦게 궤도 수정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의사양성 과정으로 의대와 의전원 병행 학제를 운영하는 대학은 서울대 의대를 포함해 모두 12개 대학이다. 이 밖에 15개 대학은 100% 의전원 체제로 전환했고, 14개 대학은 의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는 당장 내년부터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4년 의대 체제로의 완전 복귀를 이미 결정했다고 한다.

만약 의대와 의전원 학제를 병행하는 나머지 11개 대학이 모두 서울대를 따라 의전원을 폐지하고, 15개 의전원 중 일부가 의대로 복귀할 경우 현재 전체 학생 정원의 54.5%를 차지하는 의전원생의 비율은 20∼30% 수준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동안 많은 의대와 이공대 교수들은 “의전원 제도가 우리나라 의학교육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공계 황폐화’ 현상이다. 실제 각 대학에선 이공계 우수 학생들이 4학년 1학기에 휴학해 의전원 입시 전문 학원에 다니고, 8월에 시험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다. 의전원이 ‘기초과학 인력의 공동화(空洞化)를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고3 수험생들의 의대 진학 패자부활 통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과부의 의전원 궤도 수정 움직임은 이런 역기능을 차단해 보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문제는 장차 전문 의료인을 꿈꾸며 이공계 학부에 재학 중인 의전원 진학 희망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교과부의 방침을 전해들은 이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이들은 “현재 의전원에서 몇 개가 남을지 의문스럽다. 전체 입학 정원이 줄어들게 되면 경쟁률은 더 높아질 텐데 앞이 캄캄하다”고 아쉬워한다.

의전원 제도의 본래 취지를 되살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의전원생 선발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이와 유사한 형식의 학사 편입으로 학생을 뽑는 제도를 통해 의전원 정책 수정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의대를 제외한 이공계 출신의 처우 개선도 중요하다. 이공계 우수학생들이 전공을 포기하고 의전원을 넘보는 기현상(?)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장학제도의 대폭 확충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의전원을 유지하는 대학에 대해선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의 ‘당근 정책’이 필요하다. 말이 많긴 해도 의전원 제도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어 전면 폐지보다는 똑바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천천히 확실하게 꾸준히 개선, 보완해 나가는 것이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은 국력의 바로미터다. 국가백년지대계란 말도 있잖은가. 세계를 주름잡을 대한민국 의학의 힘 역시 바른 교육에서 싹튼다. 급히 서두르다 설익은 곡식을 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자칫 시류에 휩쓸리다 보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는 수가 있음을 경계해야 할 때다.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