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핏빛 민족분규 97명 사망… 또 터진 화약고 우즈벡人 피란길에

입력 2010-06-13 23:42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정국이 급박하게 요동치고 있다. 과도정부는 지난 10일 촉발된 민족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내전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는 남부의 잘랄라바드와 오쉬 지역 일대에 12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4시간 통행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번 사태로 13일 현재 최소한 97명이 사망하고, 12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반복되는 민족 분규=오쉬 지역에서 시작된 폭력사태는 인근의 잘랄라바드 지역까지 확대됐으며 수도인 비슈케크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폭도로 변한 주민들은 지역 군부대에서 장갑차와 무기류를 탈취, 무장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서까지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주민들은 “시신들이 거리 곳곳에 나뒹굴고 있고 모든 게 불타고 있다”며 “진짜 전쟁과 다를 바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우즈벡계 소수 민족은 키르기스계 폭도의 공격을 피해 인접한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즈베키스탄 내에 설치된 수개의 난민 캠프에는 이미 7만5000여명 이상이 수용된 상태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이날 예비군을 동원하고 특수부대 요원들을 소요 지역으로 급파했다. 이와 함께 정부군과 경찰에 필요할 경우 폭도들을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우즈벡계와 키르기스계 두 민족 간 분규는 키르기스스탄이 안고 있는 고질병이다. 이로 인한 정권교체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로자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대통령은 지난 4월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근거지였던 오쉬 지역에서는 그가 축출된 4월에도 지지자들이 지방정부 청사를 점거하는 등 소요사태가 간헐적으로 계속돼 왔다.

과도정부는 오는 27일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외국인 피해도 발생, 국제 사회는 예의 주시=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피해도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키르기스에서 파키스탄 학생 1명이 살해되고 15명 정도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13일 밝혔다. 파키스탄 당국은 자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키르기스 당국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대통령은 12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군대 파견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미국 국무부는 “키르기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사태가 진정되고 이른 시일 내에 평화와 질서가 회복되길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성명은 또 “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키르기스에서 실행하고자 하는 인도적 지원을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아직까지는 미국이 이번 사태에 직접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키르기스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OSCE는 “사태 해결을 위해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