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캡틴 박’의 발끝에서 유쾌한 반란이 시작됐다

입력 2010-06-13 22:14


후반 7분, 그리스 왼쪽 풀백 유르카스 세이타리디스가 중앙 수비수 루카스 빈트라에게 볼을 돌렸다. 빈트라는 공격 전개를 의식한 듯 공을 하프라인 쪽으로 길게 트래핑했다.

박지성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빈트라가 손쓸 새도 없이 공을 빼앗은 박지성은 폭주기관차처럼 튀어나갔다. 수비수 두 명이 달라붙었지만 박지성은 그리스 진영을 향해 36m를 홀로 내달렸다.

페널티박스에 이르자 급해진 1m86의 장신 수비수 아브람 파파도풀로스가 박지성의 두 발을 낚아채듯 거친 태클을 가했다. 박지성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이를 뛰어넘은 뒤 골문으로 돌진했다.

마지막까지 따라붙던 빈트라가 골문 앞에서 필사적으로 태클을 걸었지만 이미 공은 반 박자 먼저 그리스 골문으로 흐르고 있었다. 달려 나오던 그리스 골키퍼는 허망하게 반대 방향으로 넘어졌다. 그리스 골망 구석이 출렁였다. 박지성이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골을 넣는 순간이었다.

“박지성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SBS 해설자로 나선 1세대 축구 영웅 차범근씨는 쐐기골 직후 기꺼이 박지성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했다. 박지성은 전반 27분엔 박주영이 골키퍼와 단독으로 맞서게 하는 침투 패스를 성공시키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뽐냈다. 글로벌 축구 사이트 골닷컴은 “박주영에게 연결해준 패스는 그가 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지 알게 해줬다”고 평가했다.

경기 직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경기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에 뽑혔고, 그의 쐐기골은 FIFA가 꼽은 ‘오늘의 골’로 선정됐다. FIFA는 “박지성이 한국과 그리스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멋진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그와 한국 대표팀을 과소평가한 데 대한 반성문을 써내야했다. 그는 명실공히 ‘월드 스타’였다.

박지성은 인터뷰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것도 기쁘지만 팀이 이긴 게 더욱 기쁜 일”이라며 “아르헨티나전에서도 이변을 일으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성이 쐐기골 직후 선보인 ‘풍차’ 세리머니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좀처럼 굳은 얼굴을 풀지 않던 그가 해맑게 웃으며 어린아이처럼 양팔을 번갈아 휘젓는 동작이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이를 황진이춤, 봉산탈춤, 팔랑팔랑 세리머니 등으로 부르며 ‘귀엽다’는 평을 쏟아내고 있다.

단문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인 트위터에서도 이 세리머니는 화제가 됐다. “박지성 골 세리머니 대유행 예감! 오십견 예방에도 좋아요!!”라는 트위터 사용자 ‘agijung’의 한마디는 이틀 내내 트위터에서 인기를 끌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