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통쾌한 터뜨린 수비수 알고보니 공격수 출신

입력 2010-06-13 21:16


한국의 역대 월드컵 최단시간 골이자 팀 첫 골의 주인공인 수비수 이정수(30·가시마 앤틀러스)는 원래 공격수 출신이다.

축구를 시작한 이래 죽 공격수로 나서다 프로축구 K리그 안양LG(현 FC서울)에서 뛰던 2003년 조광래(현 경남FC)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를 처음 맡기 시작했다.

수비수에게 상대 골문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다. 후방을 지키는 탓에 득점 기회를 얻기란 어렵다. K리그에서 활약했던 2008년까지 6골 4도움, 지난해부터 몸담은 일본 J리그에서 올해까지 7골을 기록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골 넣는 수비수’일 뿐이었다. 누구도 그를 공격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12일(한국시간)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골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전반 7분 만에 그리스의 골망을 가장 먼저 흔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정수였다. 그의 몸속에 흐르던 공격수의 피가 용솟음치는 순간이었다.

이정수의 이 득점은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에서 이을용이 터키를 상대로 전반 9분에 골을 넣었던 한국의 월드컵 본선 사상 최단시간 득점 기록을 2분 앞당긴 것이다.

이정수는 득점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경기를 마친 뒤 덤덤한 표정으로 믹스트존에 나타난 그는 “기성용(셀틱)의 프리킥이 워낙 좋았다. 발만 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전을 앞두고 실시된 대표팀 훈련에서 상대의 세트피스 상황을 대비하다 몇 차례 골을 넣었고 이를 본 후배 오범석(울산)으로부터 ‘감이 좋다. 골을 넣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으나 실전에서 결승골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결승골로 주목받았지만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무실점 완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공격수 출신이어서 움직임과 타이밍 등을 다른 수비수보다 잘 아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에게 ‘골 넣은 순간을 다시 기억해보라’는 요청이 나왔다. “골 넣은 순간이요? 정말 기억이 안 나네요.” 쑥스러운 미소를 남기고 믹스트존을 떠났다.

포트엘리자베스=쿠키뉴스 김철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