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 이번에도 골키퍼가 대형사고… 땅을 친 잉글랜드

입력 2010-06-13 22:12


‘아 옛날이여….’

축구종가 잉글랜드가 부실한 문지기 때문에 승리를 날렸다. 잉글랜드는 13일(한국시간) 미국과의 조별예선 C조 첫 경기에서 골키퍼 로버트 그린(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어이없는 실수로 한 골을 헌납, 1대 1로 비기며 승점 1점을 얻는 데 그쳤다.

잉글랜드는 스티븐 제라드(리버풀)가 전반 4분 만에 골을 뽑아내며 쉽게 경기를 풀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전반 40분 미국 클린트 뎀프시(풀럼)의 슈팅을 그린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승리를 날렸다. 정면으로 가는 평범한 슈팅이었지만 안전하게 잡지 못하고 뒤로 흘려버린 것. 경기장은 순간 조소 섞인 웃음으로 가득 찼다.

과거 잉글랜드의 골키퍼는 강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우승을 이끈 고든 뱅크스를 비롯해 월드컵 최다 경기 무실점 기록을 보유한 피터 실튼(82년 스페인월드컵~90년 이탈리아월드컵)까지 잉글랜드 하면 바로 떠오르는 확실한 수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명골키퍼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 번번이 축구종가의 발목을 잡았다. 데이비드 시먼은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에서 상대팀 브라질 호나우지뉴의 프리킥이 패스일 것으로 착각, 앞으로 나왔다가 그대로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시먼의 실수도 뼈아팠지만 63년생인 시먼이 2002년 대회의 주전 골키퍼였단 사실 자체가 더 큰 문제였다.

세대교체에 나선 잉글랜드는 여러 골키퍼에게 골문을 맡겼지만 확실한 믿음을 주는 ‘골리’는 아직 없다. 시먼 이후 등장한 데이비드 제임스는 유로 2004 조별예선 프랑스전에서 지네딘 지단의 프리킥을 멍하게 지켜봤고, 2006년 독일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오스트리아전에서도 어이없는 실수로 2골을 허용하며 주전 자리를 내줬다. 다음 주자인 폴 로빈슨도 유로 2008 예선 크로아티아전에서 수비수의 백패스를 흘려 골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잉글랜드 팬의 속을 태웠다. 그린도 ‘칠칠치 못한 선배’들의 뒤를 잇고 말았다.

그린은 경기 후 “골키퍼의 인생은 그런 것”이라며 선전을 다짐했지만 다음 경기 출전은 미지수다. 하지만 그린 외에 대표팀 골키퍼는 숱한 실수의 과거가 있는 70년생 제임스와 87년생으로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조 하트뿐이다. 우승을 향한 잉글랜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