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김정남 전 감독이 후배들에게… “최선 다하며 경기를 즐겨라”

입력 2010-06-11 18:41


오늘 온 국민의 관심이 한국-그리스전에 쏠려 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전체 성적을 좌우할 수 있는 첫 경기라 선수들 부담감도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10일 이곳 남아공에 도착해 후배들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부터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부터 24년 전인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제가 감독이던 한국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마라도나가 선수로 뛰던 아르헨티나를 만났습니다. 아르헨티나전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리면서 그동안 우리가 준비했던 모든 노력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24년 전 월드컵 첫 골 감격

아르헨티나는 강했습니다. 우린 세계적인 선수들의 빠르고 정확한 패스와 몸놀림에 당황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전반 6분 발다노에게 첫 골을 허용했습니다. 이어진 아르헨티나의 두번째 골(전반 18분 루게리) 그리고 세번째 골(후반 1분 발다노)까지…. 아르헨티나와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그동안 기대와 생각이 현실이라는 냉혹한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스코어. 아!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벌써 3대 0이라니…. ‘이젠 더 이상 골을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아르헨티나 골문을 위협하더니 박창선이 후반 28분 한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첫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벤치는 마치 이기기라도 한듯 만세를 불렀습니다. 기뻤습니다. 선수들도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아르헨티나전 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도 흥분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이긴 것도, 박빙의 경기를 펼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종 스코어가 말해주듯 우린 3대 1로 완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르헨티나전 그 한 골의 의미가 컸습니다. 54년 스위스월드컵 무득점 패배(헝가리전 0대 9, 터키전 0대 7)의 쓰라렸던 고통이 32년 만에 다시 출전한 멕시코월드컵에서 약간은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1차전 아르헨티나전의 한 골은 다음 경기인 2차전 불가리아전에 자신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후반 26분 김종부의 동점골로 불가리아와 1대 1로 비기며 한국의 월드컵 첫 승점을 땄습니다. 직전 월드컵 대회(82년) 챔피언인 이탈리아와의 3차전에선 비록 지긴 했지만 3대 2 펠레 스코어(후반 17분 최순호 동점골, 후반 44분 허정무 만회골)를 기록하며 후회 없이 싸웠습니다.

결국 우린 그때 멕시코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령탑으로서 무한한 책임감도 느낍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를 전 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었고, 우리도 언젠가는 월드컵 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 뒤 우리 한국 축구는 꾸준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습니다. 2002년에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4강 기적도 만들었습니다.

제가 오랜 축구 지도자 생활에서 느끼고 깨달은 진리 가운데 하나는 경기에서 즐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전에서 그동안 코칭스태프와 함께 치밀하게 준비해온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저력을 세계무대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경기를 펼친다면 우린 그리스전에 승리할 것입니다. 물론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무승부, 아니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이라는 글로벌 축제의 일원으로 한국 축구를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다면 후회는 없습니다. 오늘 한국 축구의 아들들이 페어플레이,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축구를 세계에 보여줄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길…

국민들도 그리스전 90분 동안 태극전사들과 함께 뛰어줄 것입니다. 목이 터져라 응원해줄 것입니다. 이념도, 나이도, 성별도, 빈부 차이도 모두 초월한 오직 축구라는 주제로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 되는 날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탐을 갔던 12명의 사람 중 10명은 두려움에 떨면서,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이고 자신들의 모습은 메뚜기와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르게 말했습니다. “하님께서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할 수 있다, 없다의 결정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결정을 수행하는 도구로 온전히 순종할 때 우린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꿈,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