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천안함 문책 엄중하되 희생양 없도록
입력 2010-06-10 19:06
천안함 사건 군 대응 실태에 대한 감사원 발표에서 보고 지연과 보고내용 변조가 가장 두드러진다. 병역을 마친 사람이라면 “군의 생명은 보고”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전사(戰史)는 적의 공격이나 조짐을 제때 보고하지 않아 큰 패배를 당한 예들로 넘친다.
2함대사령부는 오후 9시28분 사건발생 보고를 받고 해군작전사령부에는 3분 후, 합참에는 9시45분에 보고했다. 자군(自軍) 상부에는 빨리 보고했으나 합참에는 17분이나 걸렸다. 일반 조직의 칸막이 현상이 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합참의 늑장보고는 더욱 가관이다. 합참의장에게 10시11분, 국방장관에게 10시14분에 보고가 됐다. 26분∼29분이 지연된 것이다. 그것도 발생시각을 9시45분으로 조작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청와대가 사건을 먼저 알고 국방장관을 안보회의에 불렀다. 이런 식이라면 군령(軍令)이 무슨 소용인가.
보고 중간 단계에서 내용이 변조된 것도 중대한 문제다. 천안함이 “어뢰 피격 같다”고 보고했음에도 합참과 해군작전사령부에는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속초함이 발포 대상을 북한의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으나 2함대는 상부에 ‘새떼’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일을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전전긍긍했을 모습을 안 봐도 알 것 같다. 비상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군 지휘관들이 이렇게 우왕좌왕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군의 기본인 보고가 이런데 나머지는 오죽할까. 감사원은 전투예방, 준비태세, 위기대응 조치, 군사기밀 관리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실패였다. 군은 작년 11월 대청해전 후 북한이 잠수정으로 도발할 가능성을 예상했고, 사건발생 수일 전에는 북한 잠수정 관련 정보를 전달받았음에도 적정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현역 장성이 간첩에게 작전계획을 누설할 정도로 군의 정보 마인드는 위태하다.
감사원이 통보한 25명에 대해 엄중한 징계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책은 필요한 범위에 그쳐야지 정치적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온 세상이 군대를 때릴 때 대응하며 군의 품격을 지킨 김태영 국방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