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의 추락… 차별성 없는 전략 냉대 받아 청약 경쟁률 한 자릿수

입력 2010-06-10 21:38


찬밥신세. 요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스팩 상장이 시작된 3월, 금융당국이 불공정거래행위 여부를 감시하겠다고 경고할 만큼 몰아쳤던 투자 광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게 정상적인 스팩 시장의 모습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스팩들이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는 투자 전략을 앞세워 투자자 외면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많다. 스팩은 비상장 우량기업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증시에 상장된 서류회사(paper company)다.

10일 현재 증시에 상장된 6개 스팩 중 4개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0.7%(대우증권스팩)에서 7.4%(신한스팩1호)까지 떨어진 상황. 늦게 상장된 스팩일수록 주가 상승률과 청약 경쟁률 모두 저조하다. 지난 3월 대우·미래에셋·현대·동양증권 스팩은 공모가 대비 41.6∼154.0%까지 치솟았지만, 5월 이후 상장된 우리·신한증권 스팩은 각각 최고 6%, 2%만 올랐었다. 100대 1을 쉽게 넘겼던 일반 청약 경쟁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급기야 지난 3∼4일 일반 청약을 진행했던 메리츠히든챔피언1호스팩은 최종 경쟁률이 0.66대 1로 미달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아예 상장 일정을 미루는 스팩도 생겨났다. 교보-KTB증권스팩은 지난달 말 일반 청약 하루 전날 상장 연기를 결정했다. 10∼11일 일반 청약을 받으려던 대신증권스팩도 지난 7일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해당 증권사 관계자는 “일반 공모 전에 실시한 기관 대상 수요예측 때 배정물량이 남아 돌 정도로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팩 인기는 곤두박질치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 상장된 스팩 주가가 공모가 언저리 또는 아래에서 맴도는 것은 스팩의 속성상 당연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팩은 기업 M&A에 성공하기 전까진 투자금만 갖고 있는 서류회사에 불과해 제대로 가치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스팩에 껴 있던 거품이 모조리 꺼지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스팩 시장의 부진이 심화돼 활기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데는 천편일률적인 M&A 대상을 제시한 증권사 잘못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중 공모주 청약을 진행하는 한국투자·한화증권 스팩을 포함, 거의 모든 스팩들이 지난해 1월 정부가 선정한 17개 신성장동력 산업을 M&A 대상으로 삼았다. 신재생에너지, IT융합시스템 같은 녹색·첨단융합·고부가가치 산업 등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스팩들은 다양한 M&A 대상을 제시하고, 투자자들은 여러 스팩을 놓고 투자할지 갑론을박해야 스팩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스팩들이 녹색산업 등 성장 초기 단계라서 변수도 많은 일부 업종에만 올인하며 극한 경쟁을 자초하고 실패 가능성을 키우고 있어, 투자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