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동수] 교육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입력 2010-06-10 18:39


“당선자들은 진영(陣營)사고를 버리고 넓은 안목으로 교육 문제를 바라봐야”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존 갤브레이드는 수렴(Convergence)이란 개념의 확고한 지지자요, 해석자였다. 그는 자본주의 모델과 사회주의 모델이 점점 더 서로 흡사해져서 두 체제의 결점은 없어지고 가장 좋은 점만이 반영된 사회민주주의를 낳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도 많았지만 현실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냉전 붕괴 후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장점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우월적 요인에 눈을 뜨게 됐다.

서로를 배우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선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 좌파개혁주의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혼합적 정치·경제노선이 주류를 이룬다. 근자엔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대당 정책에서 좋은 것을 베끼고 차용하는 경향이 잦아지고 있다.

수렴개념은 교육 철학과 정책에도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교육 선진국 가운데 자율과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교육철학에만 매달리는 나라는 거의 없다. 반대로 평등과 배려를 본질로 하는 사회주의적 교육에만 집착하는 곳도 찾기 어렵다. 양쪽 교육관의 장점을 수렴한 혼합형 교육정책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혼합형 교육 모델로 가장 성공한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에서도 1970년대 좌·우 진영(陣營)간 교육평준화 논란이 거세게 벌어졌다. 핀란드 정부는 소수 영재뿐 아니라 대다수 학생의 역량도 함께 키우기 위해 일반 학교와 영재 학교를 합쳐 9년제 의무교육기관인 종합학교를 출범시켰다. 학부모 단체와 교육계에선 둔재를 양산한다며 반발했지만 정책은 시행됐다. 이후 핀란드는 우수 학생은 우수 학생대로, 뒤처지는 학생은 뒤처지는 학생대로 세심하게 돌보는 맞춤형 교육 정책을 통해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교육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교육 선진국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6·2 선거 이후 이른바 진보 진영 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진보와 보수 간 대결이 격화되고 교육 현장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많이 나온다. 언론들의 논조도 부정적 전망 일색이다. 학업성취도 평가, 자율고 확대, 전교조 문제, 교원평가제, 무상급식 등 여러 민감한 이슈들이 널려있다 보니 이런 걱정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현 정부와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서로 완전히 어긋나는 교육이념과 철학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측이 내걸고 있는 교육 목표만 봐도 그렇다. 모두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경감을 강조한다. 단지 실천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다. 교육격차 해소도 양측의 의견이 갈라지지 않는 이슈다.

교육비리를 일소하겠다는 것도 공통분모에 들어있다. 현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교육비리 척결이 국정 핵심과제의 하나라고 밝힐 정도로 강조점을 둔다. 진보 진영 교육감 당선자들도 하나같이 “교육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단호한 자세를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교육비리 척결에 관한 한 양측은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타율성과 획일성을 낳는 교육, 점수 따기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창의성과 인성 위주 교육을 실시하려는 문제에서도 양측은 일맥상통한다. 현 정부가 성적 외에 잠재력 창의성 인성을 고루 감안하는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고,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는 것은 진보 측 교육철학에도 부합한다. 이처럼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찾으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문제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적 사고다. 이 사고에 고착돼 현상을 바라보면 상대편 정책은 아무리 좋아도 무조건 반대하고 폄하하게 된다. 어떤 생산적 대화도 어렵다. 교육 문제만큼은 이런 진영사고에서 벗어나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16명의 교육감 당선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대화·협력해 갈 수 있길 바란다. 교육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어야 한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