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선거 여론조사의 패배, 여의도연구소에 묻다… “한나라당, 진다고 했는데 안믿더라”

입력 2010-06-10 17:57


여당, 야당, 언론, 여론조사업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적어도 한 사람, 이해찬 전 총리는 결과를 비교적 정확히 예견했다.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이던 그는 투표 이틀 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이한 선거다. 판세 예측 어려운 게 1997년 대선과 닮았다. 투표율이 과거보다 높을 것 같다. 투표율 55%를 넘으면 우리가 근소하게 이길 것이다. 5월 28일 민주당 자체 ARS 조사에서 한 후보가 11% 포인트 뒤졌는데, 낮은 응답률 등 여론조사의 오류를 감안하면 동점이거나 약간 이기는 상황이다.”

투표율은 그가 제시한 선에 조금 못 미친 54.5%였고, 한 후보는 0.6% 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선거를 10번 치른 ‘선거통’ 정치인의 감이려니 하기엔 너무 정확하다. 도대체 무슨 자료를 근거로 그렇게 분석했는지 궁금해 민주당에 찾아갔다.

“정치 여론조사는 여연(여의도연구소)이 제일 정확해요. 우리도 그걸 입수해 보는데, 한 후보가 1심 무죄 판결 직후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를 오차 범위로 따라붙었어요. 그리고 북풍(北風)이 불어 격차가 벌어졌다가 선거 며칠 전 여연 조사에서 다시 오차 범위로 좁혔더라고요.”(김현 한명숙 캠프 선대위 부대변인)

여의도연구소는 한나라당 싱크탱크다. 민주당이 여연 자료를 토대로 감을 잡았다는 건데, 그럼 한나라당은? 김현철(51) 여연 부소장을 만난 것은 9일 오전이다.

한나라당은 안 믿었다

김 부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이다. 제13대 대선에서 아버지가 낙선한 직후인 1988년 1월 국내 첫 정치 전문조사기관인 중앙여론조사연구소를 설립했다. 정치권에선 한국 정치에 여론조사를 도입한 1세대로 통한다.

-선거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알았죠. 16개 광역단체장 승패는 다 맞혔어요.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를 우리는 ‘반투층’이라고 부르는데, 반투층 조사 결과로 예상한 당선자가 빗나가지 않았어요.”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건가요?

“강원 충북 경남은 진다고 예상했고, 서울은 격차가 너무 근소해서 놀라긴 했죠. 그렇게까지 따라 붙을 줄은 몰랐거든요.”

-서울 구청장 선거 결과는요?

“우리가 각 기초단체까지 세밀하게 보진 않아요. 기초단체 조사는 경향성을 보는 게 목적이니까. 여야 절반씩 나눠 갖지 않겠나 했는데… 갈수록 좀 밀리더군요.”

여연의 선거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는 적극 투표층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게 6% 포인트,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가 유시민 후보에게 3% 포인트 앞서고, 안상수 인천시장 후보는 송영길 후보에게 2% 포인트 차로 역전됐다는 것이었다. 오류가 많았던 기존 여론조사업체들과 달리 나머지 광역단체장 선거도 실제 결과에 근접한 수치를 제시했다고 한다.

-여론조사업체들과 방식이 다른가요?

“우린 ARS 조사예요. 전화면접보다 응답률이 낮아서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죠. 이를 보완하려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집틀을 보충해요. KT 전화번호부만 갖고 하는 업체들보다 훨씬 정확합니다(여연은 통상적인 표집틀에 자체적으로 확보한 조사 대상 표본을 추가해 모두 3∼4만개 ARS 조사용 전화번호를 확보하고 있다). ARS 조사 응답률이 4% 정도 되니까 1000명 이상 조사가 되는 거죠. 표본이 좋아서 가중치도 거의 쓰지 않아요. 가중치를 쓰면 왜곡이 커질 수 있거든요.”

-조사 결과를 당에 보고할 것 아닙니까.

“우리(여연)가 사무총장 직속 기구예요. 당연히 보고를 하죠.”

-그런데 한나라당은 왜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한 겁니까?

“믿지 않은 거죠.”

답은 간결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4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비관적인 선거 전망을 내놓았다. 김 부소장은 “그게 엄살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데 선거가 다가올수록 한나라당 내부에는 압승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당 분위기는 ‘여연 여론조사는 왜 이리 짜냐’는 식이었어요. 우리 조사를 제대로 믿지 않은 거죠. 사람은 보통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잖아요. 대다수 언론과 여론조사업체가 압승이라고 하니까 ‘너희(여연)가 뭘 알아’ 했던 것 같아요.”

민심을 몰랐던 게 아니라 외면했다는 얘기다.

88년 총선 황색바람도 안믿어

“87년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허무하게 졌잖아요. 선거 후에 보니까 노태우 후보 측에선 한국갤럽과 같이 조사해서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더군요. 우리도 체계적으로 해야겠다 싶어서 중앙여론조사연구소를 차린 거예요.”

김 부소장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쌍용증권에 다녔다. 아버지가 대선에 출마하자 휴직하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대선 패배 후 복직이 안 되던 상황에서 차린 중앙여론조사연구소는 88년 13대 총선 때 통일민주당 싱크탱크로 데뷔했다.

“당시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순서로 의석을 얻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런데 여론조사를 해보니까 제3당이 될 거라던 평민당이 제1야당 되는 걸로 나왔어요. 그때도 당(통일민주당)에선 무시하더군요. 왜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식이었죠.”

결과는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이었다. 김 부소장은 당시 무응답층을 ‘고향 변수’로 분석했다. 답변을 유보한 사람이 영남 출신이면 통일민주당, 호남이면 평민당을 지지한다는 가정 아래 분석한 것이다. 평민당 ‘황색바람’을 예견하자 더 큰 일이 주어졌다.

“아버님이 은밀히… 3당 합당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네 정당을 여러 조합으로 묶어가며 조사를 했다.

“지역감정이 심했던 때라 (통일민주당이) 평민당과 합치는 건 부산에서 여론이 좋지 않았어요. 민정·민주·공화당 통합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걸로 나왔죠.” 그의 사무실 한편에서 조사원들이 조용히 돌린 전화가 90년 1월 3당 합당의 토대가 된 셈이다.

‘정성평가’ 도입해야

“당혹스럽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연구실장)

“방송사 출구조사가 틀린 거라고 생각했다. 영문을 모르겠다.”(한국갤럽 관계자)

“여론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새로운 틀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강흥수 국민대 교수)

6·2 지방선거는 그동안 여론조사가 쌓아온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국민이 뭘 생각하는지 알아야 정부는 정책을 세우고, 야당은 대안을 만들고, 언론은 비판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지금까지 민심을 읽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김 부소장은 대부분 ‘정량평가’로 진행하는 여론조사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여년 전 그가 처음 여론조사 연구소를 열었을 때와 시대는 크게 달라졌는데 조사 방식은 변한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정성평가’다.

국민참여재판을 떠올리면 쉽다. 배심원단은 무작위로 꾸려진다. 이들은 검사와 변호사의 논박을 보고 의견을 정한다. 그렇게 결정된 배심원단 견해를 판사가 참고한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후보의 2000년 대선부터 이 방식을 선거 여론조사에 도입했다.

“주(洲)마다 약 1000명씩 성별 연령 등 인구 구성비에 따라 유권자 패널을 선정한 뒤 그들에게 이슈에 대한 교육을 시킵니다. 그런 다음 이들을 상대로 지지율을 조사합니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누구를 지지하는지 묻는 정량평가만 하는데 이렇게 하면 정당 이념 세대 등 다양한 변수를 반영할 수 있어요.”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