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사표 (死票)
입력 2010-06-10 18:03
선거권을 가진 이래 내가 찍은 사람이 잘되는 꼴을 못 봤다. 내가 살면서 간혹 그 잘난 ‘대한민국 1%’가 돼 보는 방법은 선거 개표방송을 볼 때뿐이었다. 그럴 때만 되는 대한민국 1%는 참 외로웠다. 이번에는 웬일로 조금 늘어 3%가 됐는데, 그 3%를 합쳤으면 뭐가 달라도 달라졌을 거라며 흥분하는 사람이 많아서 서글프다.
그들은 내 표를 그냥 한 표라 하지 않고 ‘사표(死票)’라 말한다. 남의 표를 함부로 죽은 표라 말할 때 대한민국 1% 혹은 3%들은 상처받는데, 내가 만만해서 족친다 는 느낌이 없지 않아 그렇다.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가 없었다면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을 거라 말하며 노 후보와 지지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세훈 한나라당 당선자의 ‘강남 몰표’ 현상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을 설득하기보다 이쪽 족치는 게 훨씬 쉬워 그러는 모양이다. 그저 우리가 만만하고, 우리가 밥이라 그런다 싶다.
선거권을 갖게 되고 처음 투표한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들은 똑같이 ‘사표’ 만들지 말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가 사랑한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눈물을 흘리며 물러났다. ‘내 표는 살았고 네 표는 죽었다’는 그 생사는 도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가르는가.
야권 단일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너무 당당해서 ‘나한테 맡겨놓은 표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맡겨 놓은 표 찾듯 ‘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네 표 이리 내놓으라’고 하는 걸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뭐가 옳은지 고민했다. 털썩 엄마 옆에 앉아 어차피 내가 찍은 후보가 될 리도 없을 텐데 찍으면 뭐하느냐고 힘없이 얘기했더니 엄마가 웬일로 정색했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가 생각한 사람을 찍어.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소수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 말에 힘을 얻어 다음날 망설이지 않고 투표했고, 이토록 욕먹는 3%가 됐다.
물론 안 될 것 알면서 표를 던졌다. 일종의 연서였다. 무력한 한 표 던져서 지지하는 후보에게 당신의 신념과 이상에 동의한다고, 득표 숫자는 적어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었다.
될 줄 알고 찍은 것 아니다. 당선되지 못했다고 해서 죄다 사표라고 말하지 말라. 함부로 남의 표를 사표라고 부르지 말라. 다른 사람도 당신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표를 던졌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가. 당신만큼이나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욕먹을 것 알면서도 대한민국 3%가 되고야 마는 그 기분을 아는가. 멋대로 남의 표 죽이지 말라. 뜻한 바를 설득하되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네 탓이라고 화내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다.
선거철만 되면 성경에서 양 많이 가진 부자가 가난한 이의 양 한 마리 잡아 잔치에 쓰려하듯, 안 그래도 서러운 소수 정당에 ‘이쪽에다 죄다 내놓으라’고 족치지 말라. 내가 찍는 그 사람 질 줄 알면서도, 그래도 기어코 찍고야 마는 애절한 마음을 함부로 사표라 부르지 말라.
<칼럼니스트>
◇바로잡습니다 : 지난 ‘낙파라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언급한 ‘낙파라치’ 제도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제 실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보건복지부에서 알려와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