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후반에 체력 떨어지는 그리스 스피드로 흔들고 주포 게카스 묶고 압박전술로 승부수

입력 2010-06-10 18:02


“첫 경기에나 신경써라.” 메시를 막을 비책을 알려달라는 한국 취재진의 물음에 히딩크 감독이 내던진 한마디이다. 히딩크는 “그리스와 1차전을 이겨야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경기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16강을 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렇다. 태극전사들이 16강을 바라보기 위해선 첫 상대인 그리스를 잡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남미 정상의 아르헨티나와 선수 대부분이 유럽리그에서 뛰고있는 나이지리아는 현실적으로 버거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제공권 강한 상대=그리스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위에 올라있는 남유럽의 강호다. 유로2004에선 일약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스는 유럽의 축구 강국들을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 으로 쏠쏠히 재미를 봤다. 철통 같은 수비로 ‘통곡의 벽’, ‘질식 수비’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 하지만 중앙수비수이자 그리스 수비진의 핵심인 모라스(29·볼로냐)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한국전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다. 게다가 개막을 앞두고 잇따라 펼쳐진 평가전에서 북한과 2대 2 무승부, 파라과이에는 0대 2 완패를 기록하며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다.

하지만 지역 예선에서 10골을 뽑아내며 유럽지역 득점왕에 올랐던 게카스(30·헤르타 베를린)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함에 따라 한국전 출전이 확실해졌다. 유로2004를 우승으로 이끈 독일 출신 레하겔(72) 감독의 지도력도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그는 “첫 경기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공언해왔다. 베이스캠프도 한국과의 첫 경기가 열리는 포트엘리자베스와 해발고도가 0m로 같은 더반으로 정했다. 그리스도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 한국과 마찬가지로 첫 경기에서 승점 3을 따지 못하면 16강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 수비수 세이타리디스는 현지 취재진에게 “우리는 신장이 우위이기 때문에 공중 볼을 잘 따낼 수 있다”며 “코너킥과 프리킥에서 승부를 걸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리스 공격수는 5명. 기성용과 한솥밥을 먹는 사마라스(25·셀틱·1m92)를 비롯해 3명이 1m90 이상이다.

◇압박과 스피드로 뚫어라= 한국 수비수들은 그리스에 비해 키가 작다. 김형일(1m87) 강민수(1m86) 이정수(1m85) 김동진(1m84) 조용형(1m82) 오범석(1m81) 차두리(1m81) 이영표(1m77)로 구성된 한국 수비진으로서는 제공권 다툼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지난달 26일 북한을 상대로 프리킥 상황에서만 2골을 뽑아냈다. 모두 주장 카라구니스의 발끝에서 시작된 프리킥 공격은 장신 선수가 헤딩으로 떨어뜨려 어시스트하거나 직접 헤딩 골로 연결시켰다. 한국 수비수들은 위험지역에선 반칙을 내주지 않는 기술적인 수비를 펼치면서 거구들을 상대로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하는 2중의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오른쪽으로 침투하는 게카스와의 싸움에서 이영표가 밀리지 않는 것도 중요 과제다.

하지만 그리스는 평가전을 통해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와 함께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경기 내내 압박을 펼쳐 상대를 뛰도록 만든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유리한 장면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지대에서 적응 훈련을 거친 한국 선수들의 향상된 심폐지구력과 근지구력이 막판 승부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가 북한과의 평가전에서 정대세(가와사키)에게 2골을 내준 장면에서 공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수비수들은 장신인 반면 순발력이 떨어져 뒷공간 침투에 약한 면이 있다. 정대세가 “경기를 뛰어보니 유럽 선수들이 확실히 느렸다”며 “상대는 키가 크기 때문에 공중전에서 밀린다. 하지만 조금 더 일찍 뛰고, 뛸 때도 상대를 견제하면서 뛰면 낫다”고 말한 대목을 곱씹으면 공격 해법이 보인다.

◇16강이 보인다= 첫 경기에서 한국이 그리스를 꺾고 나이지리아가 아르헨티나에 질 경우 17일 경기에서 첫 탈락자가 가려질 전망이다. 그리스-나이지리아의 맞대결에서 지는 쪽은 2패를 안게 돼 탈락이 확정된다. 나이지리아가 이길 경우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마지막 경기에서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리스가 이길 경우엔 한국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비교적 편안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