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총리, MB 독대 불발 건의못한 ‘인적쇄신안’

입력 2010-06-10 03:07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정쇄신안 건의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독대를 시도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9일 오전 11시부터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에게 주례 보고를 했다. 정 총리는 주례 보고에서 이 대통령에게 건의할 국정쇄신안을 준비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국정쇄신안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었다. 우선 ‘선(先) 청와대 인적 쇄신, 후(後) 대폭 개각’ 안이었다. 정 총리는 ‘개각에는 인사검증 등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이미 사의를 표한 만큼 먼저 청와대 참모진을 교체하는 게 정국 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건의안을 준비했다. 청와대 개편 이후 대폭 개각을 단행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다른 하나는 교육 경제 등 정부의 주요 정책 변화 건의였다. 큰 방향은 유지하되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변화를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정 총리로서는 일종의 승부수였다. 총리가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건의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실세형 총리도 대통령에게 청와대 개편과 대폭 개각을 건의하는 일은 없다.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정 총리는 실세형 총리가 아니다. 하지만 정 총리는 위험한 선택을 결심했다. 인적 쇄신 외에는 6·2 지방선거로 확인된 민심을 다독일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특히 정 총리는 자신의 거취까지 포함한 대폭 개각을 건의할 예정이었다. 이 대통령이 쇄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자신의 직을 걸겠다는 배수진의 의미로도 읽힌다.

하지만 독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정 총리는 주례 보고를 한 다음 자연스럽게 이 대통령과의 독대를 기대했다. 주례 보고에는 정정길 실장과 일부 수석이 배석했다. 참모들이 회의 자리를 비켜주면 독대가 이뤄지는 수순이었다. 당초 정 총리는 30분간의 독대를 예정했다고 한다.

독대가 불발된 이유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정 총리가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블로킹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정 총리가 주례 보고 후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하면 청와대 참모들이 자리를 비켜주는데 이번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독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독대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정 총리의 구상이 알려진 이상 정부와 청와대 내 인적 쇄신 작업이 급진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도영 하윤해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