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집행 비효율 개선 목소리 높아… 25조원대 재정융자사업 ‘주먹구구’
입력 2010-06-09 18:40
#1.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직원대여금 명목으로 28억7600만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예산 중 67.8%만 집행됐다. 주택자금 등을 빌려주겠다는 데도 수요가 그만큼 없었다는 의미다. 금융위는 “주택경기 침체의 영향 탓”이라지만 부정확한 수요조사가 낮은 집행률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올해도 이 사업엔 42억4500만원 예산이 잡혔다.
#2. 지난해 92억원이 투입된 전통발효식품육성사업. 고추장, 된장 등을 만드는 업체에게 시설 투자 시 전체 사업비의 80%를 대출해 준다는 것이었지만 집행률은 32.9%에 불과했다. 업체 관계자는 “품질인증업체 등만 신청할 수 있도록 대출 조건을 정해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너무 엄격한 융자기준이 집행률 부진으로 나타났다는 얘기였다.
이처럼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해주는 재정융자사업이 잘못된 예측 등으로 인해 낮은 집행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계속사업인 경우 낮은 집행률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에 오히려 요구 및 편성 예산 규모가 늘어나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만하게 운영되는 재정융자사업에 대한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집행률 낮고, 연체금은 늘고=재정융자사업은 민간금융기관이 수익성을 이유로 기피하는 사업에 정부가 재정을 빌려주는 것으로 올해는 142개 사업에 총 25조9442억원이 배정됐다. 9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6∼2009년 재정융자사업의 집행률이 70% 이하인 경우가 12.04%에 달했다.
집행 부진 사유는 ‘수요 조사가 부정확했기 때문’이 51.8%로 가장 많았다. 집행되지 않은 예산은 추후 국고 반납이 가능하나 애초에 수요 조사를 잘못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불요불급한 사업에 예산이 배정됨으로써 정작 긴요한 곳에 예산 편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예산 경직성을 가중시킴으로써 예산 편성, 집행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 것은 물론 재정 건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회수율이 낮고 연체금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정기간 동안 상환되는 회수금은 또다시 같은 사업에 재투자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업별로 회수율이 낮으면 그만큼 재정에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연체금은 6179억7600만원으로 전년대비 3.81% 증가했다.
◇평가 제대로 이뤄지나=쓸데없이 재정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철저한 관리가 뒤따라야 하지만 재정융자사업은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부처 사업 중 3분의 1이 재정사업자율평가를 받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계속사업의 경우엔 적어도 3년을 주기로 한번씩은 평가를 받도록 돼 있다. 규정에 따라 평가 대상인 사업은 올해 142개 사업 중 102개. 그러나 이들 중 64.7%인 65개 사업만 재정사업자율평가를 거쳤다.
또 평가를 통해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임에도 규정에 따라 10% 예산 삭감이 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 경우도 있다. 2008년 13억원이 들어간 ‘여성고용환경개선융자사업’은 ‘미흡’ 판정을 받았지만 올해 34억2000만원의 예산이 집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축소해야 할 사업들이 해마다 예산을 더 받으며 지속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부처들이 예산 배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전년도 예산의 집행률이 낮거나 연체금이 증가해도 일단 예산은 매년 늘려 신청한다”며 “평가를 통해 당초 예상대로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지 파악해 사업의 지속성을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