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호경] 무서운 확신

입력 2010-06-09 10:11


김대중 정권 시절인 10년 전쯤 정치부에서 한나라당을 출입할 때 일이다.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당한 뒤라 감정이 더 응어리진 시기여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기자가 만난 한나라당 의원이나 보좌진, 당직자들 상당수가 호남에 대한 적나라한 지역감정을 사석에서 예사로 내뱉곤 했다. 전라도 사람은 천성이 이러저러해서 믿을 수 없다거나, 전라도에서는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식의 앞뒤 없는 적의를 표출할 때면 충청도 출신인 기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내심 당황했다.

기자의 대학 동문인 모 의원 보좌관을 만났더니, 대화 중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A기업 총수는 고향이 ○○이다. 그러니 A기업은 전라도 기업이다. 이 기업이 DJ 정권의 자금줄임에 틀림없다.” 이 기묘한 삼단논법을 설파하는 그의 표정에는 A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반감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대략 이런 대꾸를 했던 것 같다. “당신과 내가 졸업한 모교의 설립자가 전북 고창 사람이다. 그렇다면 모교는 전라도대학이고, 같은 설립자가 창간한 △△일보는 전라도신문이라는 거냐?”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대화 내용이지만, 당시 출입처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정색하고 이 보좌관과 비슷한 편견을 수시로 드러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개 바람직한 사회적 덕목으로 옹호되는 ‘확신’이 공동체에 매우 위험할 수도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계기였다.

사람은 누구나 보편적 합리성과 논리적 인과관계를 무시한 채 인지적 편향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확신의 정도가 지나치면 사회 구성원들의 공존을 위협하는 무서운 독선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선악 또는 우열의 이분법으로 구분할 때 치명적인 비극이 초래됨을 인류사는 무수히 증언한다.

지역감정의 가장 극단적인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종주의의 역사에서도 그 추종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관념이 옮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프랑스의 왕당파 귀족 조제프 드 고비노(1816∼1882)가 아리안족의 고귀함을 강조한 저서 ‘인종 불평등론’을 출간하고, 여기에 당시 독일 문화계 및 사교계의 중심인물이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열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신념의 수호자’들에 의해 급속도로 확산된 인종주의가 나치의 유대인 말살책으로 발전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무지막지한 ‘낙인찍기’에서도 이런 무서운 확신의 일단을 발견하게 된다. 대개 권력층이나 그 지지세력이 반대편이라고 생각되는 쪽을 ‘악’으로 간주하고 가차 없는 경멸과 증오를 퍼부어대는 데서 느끼는 섬뜩함이다.

“우리법연구회는 이름 자체가 이념적 색채를 띠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서 자주 쓰는 용어다.” “전교조는 경기도에 좌파교육감을 진출시켰다… 일부 불량학생, 정치꾼 학생은 물을 만나겠지만 대다수 바른 아이들은 좌파의 목적대로 예의, 질서를 무시하는 인간으로 길러질 것이다.”

주장의 맹렬함이나 파괴성에 비해 그 논거는 단선적이고 자의적이다. 여기에 흔히 적출(摘出), 척결(剔抉), 척출(剔出) 등의 난폭한 외과수술적 표현들이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극단적인 편가르기나 이분법은 전체주의와 마찬가지로 ‘열린사회의 적들’로 작용하기 쉽다. 그런 징후가 집권층의 언행에서 점차 뚜렷이 드러나자 국민적 경고음을 발한 것이 6·2 지방선거의 민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의심할 줄 모르는 맹목적 확신은 성찰이나 자기교정을 불가능하게 한다. 증오와 단죄의 열정이 뜨거운 이들일수록 자신의 확신을 한 번 더 검증하고, 의심하고, 회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력에 가까운 이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김호경 특집기획부 차장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