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20·30대가 뒤집는 판

입력 2010-06-09 21:27


“그들을 설득하려는 논리와 정책 개발은 과제… 향후 정치 지형을 바꿀 관건 될 것”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13대 국회의원 선거는 민정당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민정당 87석, 평민당 54석, 민주당 46석, 공화당 27석, 무소속 10석. 총 224개 의석은 이렇게 돌아갔다. 소위 ‘여소야대’였다. 불과 넉 달 남짓 전 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압승했던 여세를 몰아 4·26 총선도 낙관했던 민정당이었다.

노 후보는 대선 당시 ‘3김 시대의 종말’을 내세웠다. 그런 그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으니 노 대통령으로선 “이제 3김은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민정당은 4·26 총선에서 3김의 퇴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년도 채 안 돼 민심이 바뀐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국민들은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긴 했지만 6공을 군사정권의 연장으로 봤다. 동시에 민주화가 미완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3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다. 노 대통령은 4·26 총선에 대해 “하늘이 3김 시대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훗날 회고했다.

지난 2007년 대선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를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대선 당시 이 말에 대해 “그래 맞아!”라며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흔했다. 이 슬로건을 앞세운 이명박 후보는 상대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따랐던 사람들로선 무지 아팠다. 정권을 내 준 것도 그랬지만 ‘허송세월한 정부’라는 말이 더욱 그랬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건 무슨 의미일까? 이명박 정부의 효율만을 앞세운 일방 독주에 싫증이 난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이 정부의 그러한 모습에서 ‘박정희 시대’를 떠올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는 직전 두 정부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곤란하다는 뜻과도 통한다. 4·26 총선이 3김을 살렸듯이. 6·2 지방선거에서 읽어야 할 코드는 이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전개시킨 주체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20·30대 젊은 층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자신들의 힘을 깨닫게 됐던 그들은 이번에 또다시 존재를 드러내 보였다. 사실 이 같은 기류는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가시화됐었다. 둔감한 사람들이 그걸 망각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졌던 촛불 시위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10대 학생은 물론 수많은 시민들이 참가했지만 젊은 층이 많았다. 촛불 시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놓고는 시각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를 매개체로 한 새 정부 반대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순수한 촛불문화제로 시작되긴 했지만 보수 정권에 심정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장(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본다면 6·2 지방선거 결과는 젊은 층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두 번째 ‘반격’이었던 셈이다. 그들이 일정한 세(勢)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특히 촛불 정국 이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현실 문제에 대해 더욱 진지한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사회 현상에 관심 없는 또래는 그들 사이에서 ‘개념 없는 친구’로 통한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초·중·고교를 다닌 20대는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나 정치적인 성향에 있어서 그 전 세대와는 차별성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들을 포함한 젊은 층은 트위터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그들만의 선거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새로운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의 출현이라고나 할까.

20·30대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정치 판도 형성에 있어서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키고자 한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이들에게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은 건 분명하다. 혹시라도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온 건 아니다’라며 고개 돌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러고서야 당장 7월 재·보선은 물론 2012년 대선도 장담할 수 있을까.

정원교 카피리더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