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는 길’ 매년 추모예배… 가슴에 묻은 그리움들 함께 울다
입력 2010-06-09 17:40
“1년에 한 차례라도 추모예배를 드릴 수 있어 의미 있어요. 가족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선화씨는 2005년 암으로 딸을 잃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35세의 딸은 호스피스들의 돌봄을 받으며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불교 신자였던 이씨는 이때 크리스천 호스피스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래서 그도 크리스천이 됐다. 그리고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딸이 얻었던 사랑을 다른 말기암 환자를 섬김으로써 보답하고 있다. 이씨는 추모예배에 5년째 참가하고 있다.
한덕임(63)씨는 2007년 남편과 사별했다. “집에서 혼자 추도예배를 드릴 수도 있지만 함께 하다보니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남편이 천국에서 병 없이 산다는 말씀을 듣고 위로받았지요.”
한씨는 3년간 공동 추모예배를 거른 적이 없다. 남편은 떠나기 전까지 시각장애인인 한씨를 늘 곁에서 돌봐주었다. 그래서 호스피스회에서 한씨를 위로하고 돕기 위해 권사 한 분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권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한씨를 찾아준다. 비록 남편은 떠났지만 선한 이웃들이 있기에 한씨는 외롭지 않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박정태(72)씨는 2005년 여행 갔던 딸이 사고로 사망하는 슬픔을 당했다.
“딸을 보내고 마음속에 늘 어떻게 해야 하나 부담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방송을 통해 먼저 자녀를 보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추모예배 드리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는 올해로 4년째 추모예배에 참가하고 있다. 말씀, 찬양, 시 낭송 등 짜임새 있는 추모예배 프로그램을 통해 한결 위안을 받고 돌아온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살아생전 아껴주시던 시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독일에서 매년 귀국하는 며느리, 친구·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참가하는 남성 등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해마다 추모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다. 공동 추모예배 이름은 ‘하늘 가는 길’이다. 무지개호스피스연구회에서 주관한다. 김양자(64·주님의교회 장로) 회장은 추모예배도 호스피스 사역의 하나이기 때문에 공동 추모예배를 연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정신적·신체적·영적 사별관리까지 감당합니다. 추모예배는 사별관리 사역이지요.”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현재의 높은 관심은 1986년 설립된 각당복지재단 김옥라 이사장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단은 우리 사회에 죽음에 대한 올바른 정신을 심기 위해 설립됐다. 재단 내에는 현재 무지개호스피스연구회,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 등이 있다. 김 이사장은 남편과 사별 후 “죽음의 의미를 탁상에 올려놓고 공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됐다. 죽음이 터부시되거나 사회적으로 기피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1년부터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무지개호스피스연구회는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을 유지하고 여생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해 1987년부터 호스피스 교육을 실시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는 봄·가을 두 차례 교육을 받는다. 지금까지 42기 5300여명의 호스피스가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최근에는 노인요양보호사에 관심이 몰려 호스피스 수가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김 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기쁨으로 감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스피스 사역은 사후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도와주는 신앙사역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호스피스들은 시설, 단체, 가정에서 말기암 환자, 장기 환자, 지친 가족들을 돌본다. 그래서 ‘하늘 가는 길’ 참가자들 가운데에는 호스피스 봉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종교에 관계없이 추모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하늘 가는 길’은 25일 오후 5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 부모를 여읜 사람, 슬픔 치유 상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회비 2만원, 영정을 가지고 오면 된다(02-736-0191∼2).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