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파송선교사 50가정 '선교지 재산 포기각서' 작성

입력 2010-06-09 14:30

“중복적이고 비효율적인 해외선교 형태를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저희부터 안주해 온 것들을 내려놓겠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가 필리핀으로 파송한 50가정, 90여 명의 선교사들이 큰 결단을 내렸다. 선교지 재산 포기 각서를 작성하는 동시에 선교사들이 도심에 몰려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교지역 재조정을 결의한 것이다. 이는 예장통합 총회가 파송한 84개국 선교사는 물론 한국 교계 전체에 의미 있는 파장을 보내고 있다.

예장통합 총회 세계선교부는 9일 필리핀에 파송한 선교사 50가정이 작성한 선교지 재산 포기 각서가 최근 우편으로 도착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해외 선교사가 관리하는 선교지 재산, 즉 교회 건물이나 부지, 기물 등은 당연히 파송 주체인 교단 또는 교회에 속한다. 예장통합 총회는 그 사실을 선교사 복무규정에 명문화해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명료한 문제가 아니다. 선교사 대부분이 연금 가입도 제대로 안 돼 은퇴 후 생활이 막막한 처지고, 현지 재산은 선교사가 오랜 세월 어렵게 일군 것이다 보니 일부지만 재산을 사유화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법상 재산은 선교사 또는 그와 친분이 있는 현지인의 소유로 등기되곤 해 법적 대응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교단과 교회가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가운데 이 선교사들은 자진해서 재산 포기 각서를 썼다. 4500여 평의 선교센터까지 총 8건의 부동산을 소유한 이를 포함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각서를 제출했다.

결단한 내용은 그 뿐만이 아니다. 현재 필리핀에 파송된 선교사 중 다수가 마닐라 등 도심에 몰려 생활하는 점을 스스로 돌아보며 ‘필리핀 선교사 파송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했다. 즉, 앞으로 특정 분야 전문인이 아닌, 교회개척을 목적으로 하는 선교사 파송을 당분간 중단해 줄 것을 총회에 요청한 것이다. 전문인도 기독교교육, 교회음악, 문화사역, 상담, IT, 의료, 농축산 등 분야로 한정했고, 이들은 필리핀에 오면 UCCP, PCP, PCEC 등 현지 교단과 협력하에서 사역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이 결의가 쉽지 않은 것은 현재 선교사들의 사역지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안정적으로 사역해 온 지역을 떠나 낯선 오지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자녀를 도시 기숙사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총회 세계선교부가 다음달 7~10일 84개국을 대표하는 선교회 회장 40여명을 불러 개최할 선교전략회의에서는 필리핀의 사례가 주로 다뤄질 예정이다. 세계선교부는 “선교지의 중요 사안들에 대한 결정 주체가 총회에서 현지 선교회로 차차 바뀌어 가야 한다는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교단 역사상 처음으로 이 같은 선교전략회의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의 사례에 대해서는 타 교단들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선교부는 “우리 선교사들과 현지 협력관계에 있는 타 교단 선교부 대표들과 조만간 만나 이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라면서 “선교사들의 결의가 어떤 부작용도 없이 아름다운 결실로 귀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