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동네쉼터 효창공원
입력 2010-06-08 18:42
국민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받든다. 우리는 현충일이 있는 6월과 광복절이 낀 8월에 선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국가의 여러 현충시설 가운데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효창공원이다. 국가지도자들이 찾는 국립현충원이나, 민주세력의 성지인 4·19 혹은 5·18 묘역과 달리 동네공원으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 옆에 자리한 효창공원은 본래 나무 우거진 숲에 왕족의 무덤이 들어서 효창묘로 불리다가 조선조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가 묻히면서 효창원으로 승격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왕가의 무덤이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되고 그 자리에 일본군대가 주둔하는 수모를 당하다가 해방 후 애국지사의 묘역으로 바뀌게 된다.
효창공원의 정문인 창렬문(彰烈門)을 들어서면 먼저 푸른 수직 기둥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이 ‘점지(點指)’라고 하는데, 커다란 안내판은 알아듣기 어려운 글로 가득하다. 설명문 속의 ‘사각의 투명한 육면체’는 행방불명이고, 조형물 작가 이름도 없다. 분수대 위쪽 길가에는 ‘孝昌堂’이라는 미니어처 모양의 초가집을 지어 놓아 우스꽝스럽다.
공원의 중심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를 모신 ‘삼의사 무덤’이다. 그 아래쪽으로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을 모신 ‘임정요인 묘역’, 왼쪽으로 ‘백범 김구 선생 묘지’, 그 중간쯤에 7명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 그리고 ‘백범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안중근 의사 유해의 환국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가묘(假墓)는 삼의사 묘역 맨 왼쪽에 있다.
삼의사 묘 기단부에 새겨진 ‘遺芳百世’ 석재 조각이 그나마 품위를 지키고 있다. 이 돌은 김구 선생의 장례식 사진에도 나올만큼 유서 깊다. 그러나 묘역 구성이나 무덤 배치를 보면 성역의 경건함보다는 어지러운 문중묘의 느낌을 준다. 묘지석에 엉터리 표기가 있는 것도 낯부끄럽다. 가령 이봉창 의사의 묘비에는 “일본 내각이 붕괴되는 決擧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快擧’의 오기로 보인다. 비석 세 곳의 문장은 똑같은 형식이라 묘비명 특유의 감동이 없다.
효창공원에 모셔진 분은 대부분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역만리에서 고초를 겪은 독립의 영웅들이다.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전사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도 효창공원은 한낱 동네의 놀이터 수준에 머물며 용산구청의 관리를 받고 있는 사실이 후손으로서 겸연쩍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