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채권단 ‘재무구조 개선’ 충돌

입력 2010-06-08 21:27


현대그룹과 채권단이 재무구조 개선약정 여부를 놓고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현대 측은 주거래은행(외환은행) 변경을, 채권단은 여신 동결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서로 한 치의 양보 없는 강대강(强對强)으로 맞서는 양상이다.

현대그룹 측은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데도 채권단이 으름장을 놓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 측이 채권단의 압박에 강력 반발하는 이유는 대북사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재무구조 개선약정까지 맺게 되면 그룹 전체의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대 측의 유동성에 문제가 있고,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채권단도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 4일 외환은행, 산업은행, 신한은행, 농협 등 채권단 4곳의 실무진이 회의를 열고 현대그룹 재무구조 개선약정 수용 거부에 대해 논의했다”며 “조만간 현대그룹 측에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을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보내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채권단 4개사가 함께 공동대응에 나서면 현대그룹은 더 이상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진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 측이 현명한 판단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만일 끝까지 거부한다면 신용공여한도(크레디트라인)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최악의 경우 추가 여신 중단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그룹 측은 이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약정은 채권단의 일방적인 처사로 주거래은행을 변경할 방침”이라고 정면으로 되받았다. 재무구조 개선약정이 위험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이번 경우는 멀쩡한 기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는 게 현대그룹 측의 반박논리다.

현대그룹 주장의 근거는 해운업에 대한 채권단의 이해가 부족하고, 이런 바탕 위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해운업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또한 그룹의 주력사인 현대상선이 1분기 116억원 영업흑자를 냈다는 점도 강조했다. 유동성에 문제가 없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외환은행과 거래를 중단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해운업의 급속한 턴어라운드로 현금 흐름이 안정되고 있는 만큼 채권단이 여신을 회수한다 하더라도 만기가 도래하는 여신의 상환을 채권단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내 해운기업 모임인 한국선주협회 역시 현대그룹과 비슷한 논리를 폈다. 선주협회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재무구조 개선약정 대상기업에 해운기업을 제외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며 “이는 현대상선은 물론 우리 해운업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부작용이 초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설득력이 부족한 억지라고 반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1분기 영업이익을 냈지만 금융비용 때문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해운시황도 완전한 회복을 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그룹 재무구조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높은 해운업 특성을 감안, 다양한 비재무적 항목도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현대 측은 비재무적 항목에 대한 채권단의 평가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고 되받아쳤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채권단의 힘겨루기가 소모전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현대그룹이나 금융시장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정욱 황일송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