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활개·병원 검사 대충·판정절차 허술… ‘가짜 장애인’ 판친다
입력 2010-06-08 21:34
귓병을 한 번도 앓은 적 없는 A씨(68)는 지난해 11월 청각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이 장애 등급은 귀에 대고 말을 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A씨는 8일 “단돈 35만원을 주고 모든 걸 해결했다”며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은 과정을 털어놨다. 그는 아파트 경비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지난해 10월 동료 B씨로부터 “돈을 내면 아는 병원에서 장애진단을 받게 해 주겠다. 진단이 나오면 장애수당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솔깃했다.
A씨는 B씨에게 35만원을 건넨 뒤 서울 영등포동 C병원에서 청력검사를 받았다. A씨는 청력측정기를 양쪽 귀에 대고 “어느 쪽에서 들리느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 차례 검사가 끝난 뒤 의사가 큰 소리로 “언제부터 장애를 갖게 됐느냐”고 묻자 그는 “오래 전부터…”라고 둘러댔다. A씨는 검사비 4만8000원을 낸 뒤 청각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았고 집 근처 주민자치센터에서 장애인 등록을 마쳤다.
이후 A씨는 장애수당으로 월급 5만원을 더 받고 있다. 그는 “정부가 장애인을 고용한 회사에 장애인 한 명당 20만원을 보조해 준다”며 “용역업체가 15만원을 챙기고 5만원을 수당으로 준다”고 말했다. A씨는 “업체로선 손해 볼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짜 장애인 등록을 묵인하는 것 같다”며 “병원 검사도 매우 허술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C병원 원장은 “절차를 지켜 세 차례 청력 검사를 한 뒤 진단서를 발급해줬다”며 “진료비 외에 받은 돈이 없다”고 말했다.
병원의 장애판정 검사가 허술하다 보니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가로채는 가짜 장애인과 브로커들이 판치고 있다.
지하철 요금 무료, 휴대전화 통화료 35% 할인, 자동차 취득세·등록세 면제, 소득세 공제(1인당 연 100만원) 등 1∼6급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노리는 것이다.
심지어 장애진단서를 위조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경기도 용인시 S병원 원장의 동생이자 사무장인 김모(68)씨는 지난해 11월 인천시 성남동 한 병원에서 목발을 짚고 진료를 기다리는 트럭 운전사 박모(42)씨에게 다가가 “돈을 내면 지체장애 3급으로 등록해 준다”며 꼬드겼다. 그는 S병원 근처에서 판 의사 도장과 병원 직인을 이용해 장애진단서를 위조해 주고 박씨에게서 500만원을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08년 1월부터 이런 수법으로 박씨 등 212명에게서 20만∼500만원씩 받고 가짜 장애진단서를 만들어 주고 3억 2000여만원을 받은 혐의(사문서 위조 등)로 김씨를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가짜 장애인 212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김씨로부터 가짜 장애진단서를 받은 212명 모두 거주지 주민자치센터 170여곳에서 지체장애 3, 4급 등록 절차를 마쳤다. 경찰 관계자는 “장애인 등록을 담당하는 주민자치센터에서 병원에 전화 한 번만 하면 확인할 수 있는데도 별도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이 같은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웅빈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