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을 떠나야 한다” 발언 파문… 60여년 백악관 출입 89세 여기자 사직

입력 2010-06-08 21:46

미국 백악관에서 지난 60여년간 대통령들을 취재해온 전설의 여기자 헬렌 토머스가 결국 유대인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레바논계 미국인인 토머스는 오는 8월이면 90세가 된다.

토머스가 칼럼니스트로 활약해온 소속사 허스트 코퍼레이션은 7일(현지시간) “토머스가 사직했다”고 발표했다. 미 언론들은 그의 사직을 일제히 주요 뉴스로 전했다.

토머스는 지난달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행사에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폴란드나 독일, 미국으로 떠나야 한다. 이 사람들(팔레스타인 주민)은 자신들의 땅을 점령당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비디오 동영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졌고, 유대인들은 그를 강력히 비난했다. 세계유대인회의(WJC) 앨런 스타인버그 대표는 “그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홀로코스트와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토머스에게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던 일부 백악관 전·현직 대변인이나 기자들도 비난에 가세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그의 발언을 “모욕적이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토머스가 대통령과의 회견 때면 수십년 동안 늘 앞자리에 앉는 관행을 못마땅해하던 일부 기자들도 그런 특혜를 계속 줘야 하는지 불만을 제기했었다.

토머스는 이번 발언 뒤 곧바로 사과했지만 비난이 확산되자 회사 측은 그를 사직시켰다. 불명예 퇴진에 따른 동정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ABC방송의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샘 도널슨(76)은 “토머스는 여성 분야의 개척자였다”며 “아무도 헬렌으로부터 그 타이틀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그가 취재한 미국 대통령은 무려 10명이나 된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