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란·한기창 개인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솟는 희망의 빛

입력 2010-06-08 18:07


단추를 화면에 붙이는 황란과 엑스레이 필름을 캔버스로 삼는 한기창. 이색적인 재료로 작업하는 두 작가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나란히 개인전을 연다. 황란은 학고재 본관에서, 한기창은 신관에서 7월 11일까지 각각 작품을 펼쳐보인다. 단순히 재료 특성 때문에 두 작가를 한 데 모은 것은 아닐 테고 뭔가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다.



황란의 전시장 한쪽 벽에는 홍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붉은 꽃과 검은 줄기 모두 핀으로 꽂혀 있는 단추들이다. 실과 단추, 핀과 구슬로 작업하는 작가는 원래 회화작가였으나 1997년 뉴욕 유학 중 생계를 위해 패션업계에서 일하다보니 이런 작업을 하게 됐다.

수 만개의 단추나 구슬을 핀으로 박아 형상을 드러내는 작업은 2001년 9·11 테러 이후부터다. 살아남기 위해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광경을 목도한 작가는 구슬 하나 단추 하나에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보통 사람의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단추 부스러기들은 생명을 다한 존재인 동시에 재탄생을 예고하는 생명의 씨앗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비상하는 새와 울긋불긋한 꽃 등 단추를 박아 완성된 형상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단추 하나하나를 직접 염색하고 손톱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망치를 반복해 두드려야 하는 고된 노동이 숨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작품은 화려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우리 삶의 모습과 같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한기창은 1993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신 깁스를 한 채 병원에만 갇혀 지내야 했던 그는 엑스레이 필름이 그림 같다고 느껴 이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으로 사람의 골격을 표현하다 꽃으로 나아갔다. 피었다가 지는 꽃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섰던 작가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번 전시에는 기존의 꽃 이미지에서 발전한 산수풍경과 역동적인 말(馬) 이미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색색으로 변하는 LED를 이용한 작품들이 한결 푸근해졌다. 특히 갈기와 꼬리를 날리며 금방이라도 힘차게 달려나갈 듯한 말 이미지에서는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말 작품을 통해 더 자유롭고 역동적인 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각각의 개인전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주는 공통의 메시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솟아오르는 희망의 빛이 아름답다.”(02-720-125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