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0주년-문학으로 본 전쟁과 기억] 박조열의 작품세계는
입력 2010-06-08 17:36
작품마다 분단 현실 다뤄 80년대 대학가서 큰 인기 고초 겪은 후 현실과 거리
박조열 작가는 모든 작품에서 분단 현실을 다뤘다. 1963년 쓴 처녀작 ‘관광 지대(판문점 명도소송)’의 무대는 판문점이다. 주인공은 육군 일등병인 한남북. 주인공 이름부터 다분히 비유적이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판문점 일대는 그의 집이었다. 지금은 남과 북의 영토라고 하는 곳이 이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하면 서로 자기 자리라며 차지하던 공간이었다. 한남북은 아버지를 공산군에 잃고, 어머니를 미군의 폭격에 떠나보냈다. 북에 누이를 두고 온 그는 월북을 종용받기도 한다. 한남북의 소송사연과 남북 회담이 시작되면서 극은 소극(笑劇])적 성격을 강하게 띈다.
이 작품은 80년대까지 대학가의 단골 레퍼토리일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삼엄한 검열 탓에 한 대학에서는 40분짜리 공연이 25분으로 단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고 이후 작품은 현실과 거리를 둔 은유를 통해 이야기를 펼쳐나가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이자 공식 데뷔작인 ‘토끼와 포수’(1964)는 겉으로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혜옥의 집에 세를 들게 된 장운의 밀고 당기는 사랑이야기와 혜옥의 딸 미영과 곤충학도인 기호의 연애담이 맞물린다. 모든 작품에서 분단 상황을 잊지 않은 작가는 이들이 사랑싸움을 할 때 쳐놓은 빨래줄처럼 분단이 어렵지 않게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 작품도 검열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유일한 연극상이었던 동아연극상 대상, 연기상, 희곡상을 휩쓸며 그를 유명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표작인 ‘오장군의 발톱’(1974)은 전쟁 중인 두 나라와 그 사이에서 희생되는 순수한 청년의 이야기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로서는 당연히 남북을 대입시키게 되지만 정작 작가는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일 뿐 이데올로기가 들어가면 다른 작품이 된다”고 확대를 경계한다.
당시로선 드문 토론극 형식을 도입한 ‘가면과 진실’(1975)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후락을 비롯, 북한 외무상 허담, 딘 러스크 전 미 국무장관 등이 등장해 각자가 구상하는 통일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이다. 비슷한 형식의 ‘조만식은 지금도 살아있는가’(1976)는 좀 더 극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조만식을 대표로 한 북한의 조선민주당 세력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어떻게 희생됐는가를 조만식의 정치적 활동을 중심으로 엮었다. 박 작가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창작을 중단했다.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