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헝가리… 재정위기 동유럽 확산 우려에 금융시장 요동

입력 2010-06-07 21:24


‘동유럽 재정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지난해 2월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으로 꺼진 줄만 알았던 불이다. 지난 주말 미국·유럽 증시에 이어 7일 아시아 증시도 급락했다.

출발은 헝가리지만 결국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전역으로 재정위기가 전염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복잡한 채권·채무관계로 얽히고설킨 유럽 입장에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시나리오다. 견조한 동유럽 국가의 경제 상태를 간과한 과잉반응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시장 휘청=이날 코스피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26.16포인트(1.57%) 내린 1637.97로 마감했다. 장중 45포인트 이상(2.73%) 빠졌다. 외국인들은 26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코스닥지수는 10.59포인트(2.14%) 내린 483.12로 마감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4.1원이나 급등한 1235.9원에 거래를 마쳤다.

아시아 증시도 줄줄이 추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3.84% 급락했고 대만(-2.54%) 홍콩(-2.03%) 중국(-1.64%) 등도 하락폭이 컸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증시는 1% 이상 하락세로 출발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그리스도 안 끝난 상태에서 헝가리 사태로 유로 약세와 달러 강세뿐만 아니라 원·달러 환율에도 당분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동유럽 형편 나쁘지 않다=동유럽 국가들의 재정 상태는 나쁜 편이 아니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올해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비율(국내총생산(GDP) 대비, 이하 동일)을 2.4∼8.6%로 전망했다. 남유럽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9.8∼-5.3%보다 높다. 경상수지 전망치는 -6.0∼8.3%다. PIGS의 -10.3∼-3.2%보다 훨씬 낫다. 올해 동유럽 국가들의 GDP는 전년보다 -3.5∼2.7% 성장할 것으로 봤다. PIGS(-3.0∼0.8%)나 EU 전체(1.0%)보다 좋다.

HMC투자증권 이형원 수석연구원은 “헝가리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폴란드 등 동유럽 주요 국가들이 IMF 구제금융 이후 재정개혁에 나서고 있다”며 “동유럽 국가들의 예상치 못한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헝가리의 내부 단속용 발언에 국제 금융시장이 과잉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지난 4월 집권한 보수 정권은 ‘세금 감면’과 ‘재정지출 감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며 “그러나 경기부양을 위해선 지킬 수 없게 되자 재정적자 전망치를 키워 내부 반발을 억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권국가들의 대규모 손실 우려 확산=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복잡한 돈 관계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말 현재 동유럽 국가들의 해외 채무액(익스포저)을 1조3966억 달러로 계산했다. 이 중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우량 국가가 42.3%(5904억 달러), 심지어 PIGS도 21.6%(3010억 달러)가 물려 있다.

동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될수록 이들 국가와 은행들의 재정건전성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재정위기의 본질은 채무 재조정과 관계돼 있다”고 말했다. 동유럽을 비롯한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이 재정 긴축과 구조조정을 진행하면 채권자들의 고통분담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채권국가들의 막대한 손실을 의미한다.

지난 주말 헝가리 증시가 3.34% 하락했을 때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채권을 많이 갖고 있는 오스트리아 증시는 4.12%나 폭락했다. 김 팀장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그리스 재정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5월 초 고점을 넘어선 상황”이라며 “이는 채권 보유국가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예의 주시=금융당국은 동유럽 재정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재확산되자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키로 했다. 일단 국내 금융기관들은 헝가리 문제로 직접 타격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말 현재 국내 금융회사가 가진 헝가리 채권액은 5억4000만 달러로 전체 대외 채권액(533억 달러)의 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특히 3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이 헝가리로부터 차입한 금액은 전무하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