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당정섬을 아시나요

입력 2010-06-07 17:48


‘섬 주위는 커다란 포플러로 방풍림이 형성되었고,/ 땅콩 밭을 지나 강가로 내려갈라치면,/ 굵은 호박돌밭과 이어지는 자갈밭… 그리고 은빛 모래…/ …씨앗을 뿌려 놓은 듯 노랗게 드러나곤 했던 한강의 재첩들…/ 당정섬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이루고,/ 잔뜩 산소를 머금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며/ 그냥 떠먹어도 가슴까지 시원하던…/ 맑은 한강 물.’(출처: http://cafe.naver.com/grhanam)

팔당대교 아래에 있었던 당정섬의 50년 전 풍경을 읊은 글이다. 이 섬은 9년간 계속된 골재 채취 작업으로 1995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동서로 2.3㎞, 남북으로 1.25㎞에 이르던 큰 섬은 주변의 물살을 빠르게 만들어 수질을 정화했다.

지난 5일 당정섬이 있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모래톱이 다시 생겨났다. 남쪽 강안에 돌출한 습지와 하중도도 생성됐다. 모래톱에는 민물가마우지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왜가리와 백로도 날아다닌다. 강물이 포말을 일으키는 여울도 관찰됐다. 이곳에는 겨울 철새 고니가 찾아오지만, 커다란 날개로 10분이면 날아갈 잠실과 여의도에서는 고니를 볼 수 없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는 “물이 얕은 여울과 모래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강에 관해 잊혀진 진실은 60년대 말까지 물이 깨끗했다는 것 말고도 더 있다. 여의도와 뚝섬 외에 미사리, 잠실, 신사·반포 등이 모두 섬이었다는 사실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그밖에도 광나루, 용산·마포나루터, 압구정, 노량진, 양화리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모래가 많은 한강을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불렀다.

하천 모래는 투수성이 높아 지하수를 함양하고, 부착미생물의 서식지가 됨으로써 다양한 수서곤충이나 어류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두 차례의 한강 종합개발계획을 거쳐 이들 하중도와 모래톱이 여의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육지화하거나 골재 채취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한강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잠실과 신곡의 두 수중보로 막힌 한강 하류는 계단식 저수지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강 수질은 하류로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모래톱은 흐르는 강물을 정화하는 역할도 한다. 낙동강과 섬진강 하류에는 모래톱이 풍부하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낙동강과 섬진강 하류의 수질이 중류 일부 구간보다 더 좋고, 한강 하류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도 진정한 자연 복원보다는 개발 사업의 성격이 짙다. 보와 콘크리트 호안을 그대로 둔 채 콘크리트의 모양과 포장만 바꿨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와 서울시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반포의 분수대, 여의도 특화지구, 서해연결 주운 등 돈이 많이 드는 전시성 사업에 대해 반대와 논란이 많았다. 시민들 대다수는 한강 사업의 공감대를 자연성 회복에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가까스로 재선된 후에도 한강주운 사업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단순화하면 과거와 현재의 한강 가운데 선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강수욕을 하는 자연 하천이냐, 가둬 둔 많은 물과 높은 수위로 관리되는 강이냐. 결국 2개 보의 철거가 첫 관건이다. 보 철거는 한강의 생태계를 다양하게 만들 것이지만 수위의 저하와 취수량 감소, 그에 따른 주민들의 상실감 등 이해관계의 충돌을 불러올 것이다.

한강의 변천사는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백사장을 없애고 파낸 모래를 아파트에 쏟아 부으면서 우리는 자연보다는 인공을,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수고보다는 편리함을, 신성한 땀과 노동보다는 투기를 더 중요시하고 섬기면서 살아 왔다. ‘돈이 되는 것’은 언제나 전자보다는 후자였다. 그러나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파트 투기 붐의 퇴조와 함께 환경과 자연의 가치가 돈이 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임항 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