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연개소문과 김정일은 닮은 꼴

입력 2010-06-07 17:48

김정일이 썼다는 논문 한 편이 인터넷에 유포돼 있다.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데 대하여’라는 글이다. 일반 논문 형식을 갖추지 않은 짧은 글이지만 삼국통일에 대한 시각전환이 필요함을 논증한 점에서는 논문이라고 부를 만하다. 1942년생인 김정일이 1960년 10월 29일에 썼다고 한다.



논문은 신라가 고구려 영토를 전부 차지하지 못한 사실을 들어 삼국통일을 부정한다. 발해가 대동강 이북 고구려 땅을 200여년간 지배해 옛 삼국시대 영토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했으므로 삼국은 통일됐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신라는 영토를 넓히려는 야망만 있었을 뿐 통일국가를 지향하려는 의지와 역량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신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위해 줄기차게 투쟁했지만 좌절됐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강한 통일의지를 가진 쪽이 역사의 정통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고구려주의’라 부르자.

“의견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E H 카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 인용된 C P 스코트의 경구(警句)다. 김정일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뒤 국내 사학계에도 ‘통일신라시대’ 대신 ‘남북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이 글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김정일은 고구려 멸망 원인을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 통치배들 사이에서 알륵과 분렬이 급격히 심화”된 데서 찾았다. 고구려 통치배들이 저마다 연개소문의 세 아들을 끼고서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를 벌이는 바람에 정치혼란과 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연개소문의 자리를 물려받은 장남 남생은 성들을 순시하러 평양을 떠났다가 두 동생에게 쫓겨나자 당나라에 투항해 고구려 침략길을 안내했다.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12개 성을 신라에 바치고 항복했다. 그러나 고구려를 망친 책임은 결국은 포악한 전제정치로 인심을 잃은 연개소문에게 있다고 하겠다. 쿠데타를 일으켜 왕과 대신들을 도륙하고 족벌지배체제를 만들었으니 그의 사후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다.

지금 북한에서는 연개소문 시대와 같은 상황을 낳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삼남 김정은에게 위협당해 국외로 쫓겨다니는가 하면 김정은의 후견인 이제강은 오가는 차도 많지 않은 평양에서 한밤중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연개소문 아들들의 내분을 안타까워한 김정일 논문과 그로부터 50년 후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종의 데자뷔(deja vu)일까.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