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변곡점에 다다른 이명박 정부
입력 2010-06-07 18:04
“대통령은 6·2 민심 받들어 제왕적 리더십에서 벗어나 포용의 리더십 보여주길”
국가와 기업 등의 수명 사이클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것 중 하나가 시그모이드 곡선이다. 생명주기 곡선으로도 불린다. 이 이론 가운데 변곡점이 눈길을 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성장단계를 지나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뜻한다. 이때 새로운 동력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따라 번영과 몰락이라는 상반된 길을 걷게 된다.
여권 패배로 끝난 6·2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가 변곡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림길에 선 것이다. 시기도 미묘하다. 임기 절반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대통령과 참모들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여권의 독주를 막자는 것이 6·2 민심이다. 독주란 무엇인가. ‘남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행동하는 것’이다. 독선 오만과 닿아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수습과 최초의 원전 수출, G20 정상회의 유치 등 성과가 적지 않았으나 국민들은 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에 겸손해지라고 주문한 것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의 사전 협의절차 없이 세종시를 수정하겠다고 불쑥 꺼낸 것이나, 각계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것이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민의를 받든다면 이 대통령은 리더십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제왕적 리더십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개념을 만든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마이어 슐레진저 주니어는 위기 대처 과정에서 의회를 존중하지 않은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정의했다. 국회를 거수기쯤으로 여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이 대통령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그리 존중하지 않았다. 세종시 추진 과정이 그랬다. 고비용·저효율의 국회를 ‘여의도 정치’라 부르며 불편한 심기를 종종 노출하기도 했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국회를 경시해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 국회의 지원 없이는 국정을 원활히 이끌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과거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던 때를 되돌아보면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반동의 성격이 짙다.
위기가 닥쳤을 때 위험신호를 무시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대처하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 대통령이 더 큰 화를 입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국회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당·청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여당 의원들의 볼멘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비근한 예로,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해 수백 쪽에 달하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를 외국 정부에는 배포했으면서도 국회에는 보내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대북 제재 조치들이 하나하나 취해지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응징하면서 위기까지 관리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야당을 포함한 국회와 협의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유연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반대세력과의 대치 전선은 줄일 필요가 있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 외에도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좌파 성향의 단체들과 곳곳에서 맞서 있는 형국이다. ‘법대로’도 좋지만, 사회 분열상을 심화시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예전에 말했던 대로, 좌파 정책이라도 국민에 이익이 된다면 채택하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향후 청와대나 내각을 바꿀 때 ‘회전문 인사’는 피하는 게 옳다. 학연·지연에 얽매여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편가르기라는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고, 국민 그리고 국회와 소통하는 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전직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5년 임기 동안 제왕적 지위에서 레임덕까지 양 극단을 오갔다는 점이 그것이다. 반복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역사이지만 벌써 세 번이나 되풀이됐다. 이 대통령이 부끄러운 대통령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통치능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