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편지] “이곳에선 절대로 걸어 다니지 마세요”
입력 2010-06-07 21:20
남아공의 위험한 치안 소식이 한국에도 연일 전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곳 치안이 어느 정도인지 제 경험담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저는 지금 허정무호 남아공 캠프인 루스텐버그 소재 5층 짜리 자그마한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대표팀 근황을 보도하느라 고생 중인 한국 취재단 대부분이 여기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호텔에서 직선거리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식당가가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그냥 몰(mall)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스파게티, 햄버거 또는 초밥 등을 파는 일식당이 있어 한국 기자들이 가끔 여기로 밥을 먹으러 갑니다.
300m면 걸어서 5분이 채 안 걸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입니다. 그런데도 저희들은 이곳까지 걸어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취재단 버스를 타고 갑니다. 신변 위협 때문입니다. 식당가까지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근처에는 흑인들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흑인들에게 동양 사람은 좋은 범죄 먹잇감입니다.
흑인들은 동양인들이 항상 현금을 갖고 다니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영어가 짧아 경찰에 제대로 의사 표현을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길거리에서 동양 사람을 만나면 범죄로 먹고 사는 일부 흑인들 입장에선 횡재한거나 다름 없습니다.
남아공에서 알게 된 교민 이찬우(46)씨는 “이 나라에선 한국 돈 5만원이면 실탄이 포함된 권총을 살 수 있어요. 흑인들은 여차하면 권총 방아쇠를 당깁니다. 절대로 걸어다니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흑인들에게 영어로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씨는 대꾸도 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제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한국 기자들은 사파리 관광객이 됐습니다. 버스 밖에는 맹수들이 우글거리고. 버스 안 관광객은 ‘설마 여기까지 들어오진 못하겠지’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사파리 버스 아시죠? 제가 긍정적인 성격이라 재밌게 표현했지만 사람이 사람을 경계한다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한국 취재단은 아침마다 호텔 로비에서 식사하며 ‘모 방송국 PD가 요하네스버그에서 흑인들에게 집단 폭행 당했다. 모 신문사 기자도 더반에서 털렸다’는 ‘값진’ 정보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남아공에 취재차 온 한국 사람들이 피해자여서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기백으로 따지면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 기자들이지만 당분간은 불상사 없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야만 아직 한참 남은 태극전사들의 남아공월드컵 경기 소식을 한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취재단 전원이 큰 사고 없이 무사히 귀국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루스텐버그(남아공)=이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