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래서야 국정쇄신 제대로 되겠나

입력 2010-06-07 17:44

여당의 지방선거 완패 이후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인적쇄신 수준과 범위를 놓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온도 차가 심하다. 친이명박, 친박근혜계 간에 약간의 편차가 있으나 한나라당은 신속하고 전면적인 당·정·청 인적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반면 청와대는 7·28 국회의원 재·보선 이후 당청 개편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번 선거결과를 바람에 비유하며 “바람을 따라갈 수는 없다. 바람을 쫓아가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정정길 대통령실장 사의는 도의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며, 내각에 선거 결과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라고 했다. 선거를 진두지휘한 당에서 책임질 일이지 청와대나 내각엔 책임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의 상황인식이 이렇게 안이하니 국민이 바라는 제대로 된 수습책이 나올지 걱정이다.

이 대통령은 어제 예정됐던 제42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취소했다.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취소한 건 처음이다. 선거관련 대통령 발언은 청와대 대변인 등을 통해 간접 전달됐을 뿐 이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상대로 선거에 대해 밝힌 적은 없다.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국정에 어떻게 반영할지 아직 정리가 안 된 탓일 게다.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두 달은 너무 길다. 전국 단위 선거를 통해 민의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당청 개편을 7월 재·보선 후로 미루는 건 책임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여권 내에서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민의를 잘못 전달한 청와대 참모에 있다는 지적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은 선거 현장에서 민심의 변화를 절감하고, 어떻게 해야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당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올바른 쇄신안을 내놓을 수 있다.

어제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다수 의원들이 정풍(整風) 수준의 대대적인 당·정·청 개편을 요구했다. 이게 국민의 바람이다. 청와대와 당의 인식이 다르고, 대처 방식에 있어서도 마찰을 빚으면 7월 재·보선도 결과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