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김명호] 부시의 ‘물고문’ 소신

입력 2010-06-06 19:23

“예, 우리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물고문(waterboarding)했지요.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또 (고문을) 할 겁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시절 중앙정보국(CIA)이 테러리스트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한 물고문 방식을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지난 2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시(市) 경제클럽에서 가진 연설 중 청중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정권이 부시 정권 때 CIA의 물고문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하면서 강력히 비난하고 난 뒤 처음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동안 딕 체니 전 부통령이나 부시의 최측근이었던 전 백악관 비서실장 정도가 “물고문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었으며, 추가 테러나 인명 손실을 막았다”고 말해왔을 뿐이다.

9·11 테러의 주모자 중 하나인 모하메드는 붙잡힌 뒤 CIA로부터 183회 물고문을 당한 것으로 법무부 조사 결과 밝혀졌다.

CIA는 이 밖에도 잠 안 재우기, 벌레가 가득 든 상자 안에 집어넣기 등 ‘가혹한 심문기법’을 활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는 또 “사담 후세인 제거는 옳은 일이었으며, 세계는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유였던 대량살상무기(WMD)가 결국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부시는 대통령 재임시기인 2006년 중간선거 직전 CIA의 물고문 의혹이 일자 “우리는 고문을 하지 않는다. 국가 방어를 위해 붙잡은 사람들이 유용한 정보를 가졌는지 심문할 뿐”이라고 부인했었다. 하지만 2008년 CIA의 물고문 사례가 밝혀진 뒤 의회가 물고문 등 가혹한 심문기법 금지법안을 통과시키자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부시는 자신의 재임시절 여러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한 청중의 비판을 기대하는 질문에도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은 아니지 않냐”고 점잖게 받아치기도 했다.

부시의 연설 행사에는 지역 상공인 등 2300명 정도가 참석했다. 부시의 언급 내용은 지역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다. 전 정권의 가혹한 심문기법을 맹렬히 비난했던 백악관 측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