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백진주, 인터뷰하는 카페에서 찬송가 314장 켜다
입력 2010-06-06 20:23
청와대, 미국 톱가수·유명인사 앞에서 연주하던 그녀
“하나님이 제게만 주신 바이올린 음색이 있어요. 한번 들어 보실래요.”
바이올리니스트 백진주(43)는 기자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슴없이 바이올린을 케이스에서 꺼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커피숍 매니저에게 음악을 꺼 달라고 부탁하고 테이블마다 양해를 구했다. 백진주는 잠깐 악기를 조율하더니 찬송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을 즉석에서 연주했다. 연주자가 인터뷰 도중에 무대도 아닌 커피숍 테이블에서 선뜻 연주하기란 쉽지 않다. 유명 연주자라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하지만 이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는 개의치 않았다.
국내에서 백진주란 이름은 낯설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 흥행하는 영화 4편 중 3편에 그의 연주가 들어 있다. 월트 디즈니 자회사인 픽사의 전속 연주자인 그는 ‘아바타’ ‘해리 포터’ ‘슈퍼맨 리턴즈’ ‘스타워즈’ ‘업’ ‘클릭’ ‘데자뷰’ 등과 한국영화 ‘뷰티플 썬데이’ 등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또 셀린 디옹, 제임스 브라운, 폴 영, 로드 스튜어트, 샌디 패티, 맥스 루카이도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가수들의 콘서트와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이와 함께 종교음악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 크리스털처치(수정교회)에서 현재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 등을 스스럼없이 만나 음악을 들려준다고 한다. “연주자로서가 아니라 친구 자격”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세계여성지도자포럼 등에 초청돼 청와대에서 여러 번 연주했다. 청와대 연주 이야기가 나오자 “청와대에 피아노가 없어 바이올린만 켰다”며 우리나라의 음악적 수준을 안타까워했다.
선화예고를 다니다 미국으로 이민, 미국 UCLA에서 석,박사를 졸업한 그는 칼스테이트 롱비치(Cal State Long Beach)와 바이올라(Biola)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원한다면 아무데서나 바이올린을 켠다는 그는 “외할아버지가 ‘네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까. 누가 바이올린을 켜달라고 하면 절대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의 외조부는 최도명 장로다. 부친은 복음성가 ‘돈으로도 못가요’의 작곡가 백광제, 모친은 피아니스트 최영은씨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백씨가 이번에 한국에 나온 것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사역하기 위해서다. 교회 초청 연주는 물론이고 예배를 돕는 사람으로서의 예배 뮤지션을 키워내겠다는 계획이다.
“모든 클래식 음악이 주님을 향한 곡이에요. 무엇보다 좋은 뮤지션을 키워내면 그만큼 더 많은 이들과 찬양을 나눌 수 있는 거죠.”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60여 교회 무대에 섰다. 최근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내고 지인 등 20여명을 매달 초청, 작은 음악회를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커피숍에서는 비정기적 ‘게릴라연주회’를 갖는다. 커피숍 사장은 공짜 커피를 내놓고, 연주 후 송경부 예수길교회 목사는 말씀을 전한다.
백 교수의 국내 연주사역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만의 깊이 있는 바이올린 선율 때문이다.
첫날 커피숍에서 갑작스레 들은 연주는 바이올린으로 찬송가를 노래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대중가요 연주를 듣고도 “곡이 끝난 후 왠지 ‘아멘’하고 싶어져요”라고 말한다며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주신 달란트라며 활짝 웃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