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친 민심-③ 전통적 텃밭이 흔들린다] 공천 잡음·‘일꾼’ 선택… 정당 간판 위력 약화
입력 2010-06-04 18:25
6·2 지방선거에서 ‘파란색(한나라당 상징색) 막대기만 꽂아도 영남에선 당선된다’는 통념은 통하지 않았다. 호남에서도 ‘민주당 공천=당선’ 등식이 깨졌다. 충청권 맹주를 자처했던 선진당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여야 모두 텃밭이 흔들린 것이다. 왜일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경남 김두관(무소속), 강원 이광재(민주당), 충남 안희정(민주당) 당선자는 지역주의 구도를 깼다. 영호남 기초단체장 선거도 주목할 만하다. 부산구청장 16곳 중 3곳, 경남 기초단체장 18곳 중 6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광주·전남 기초단체장 27곳 중 8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광역, 기초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상당수 의석을 무소속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 뺏겼다.
여야가 텃밭에서 고전한 첫 번째 이유로 공천 잡음이 꼽힌다. 한나라당 경남지역 의원은 4일 “솔직히 내가 봐도 공천이 잘못된 지역이 많았다”며 “공천 실패로 한나라당 대 반(反)한나라당 구도로 치러졌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공천 기준을 제시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실제로는 총선을 의식한 지역구 의원들이 경쟁자의 싹을 자르기 위해 지역 주민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웠다는 비판이 많다. 민주당 전남지역 의원은 “정당공천제도 중요하지만, 유권자들은 인물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당에서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어차피 당 간판만 걸어 내보내면 당선될 것이라는 의원들의 오만함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여기에 “번번이 찍어 줬지만 정작 해 준 건 없다”는 역차별 정서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또 지역주의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젊은층이 대거 선거에 참여하면서 인물을 보고 선택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렇듯 여야의 텃밭이 흔들렸다는 것은 지역 기반을 둔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 현상이 완화됐다는 점에서 정치 발전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이런 현상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이 인물을 중시하지만, 총선이나 대선은 중앙 정치의 영향력하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인물을 보고 투표하다보니 지역주의가 완화된 측면이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우리 지역과 더 가깝다고 생각한 후보들이 당선됐다는 점에서 거꾸로 지역주의가 작동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선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 후보로 나온다면 결국 지역주의 현상은 또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영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선전하는 크로스 지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라며 “한나라당 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민주당 하는 게 미워서 차악을 선택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