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그대는 향기로운 꽃
입력 2010-06-04 17:44
시인 정호승 님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라는 시는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로 시작한다. 이별의 상처로 인해 아픈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덧입고 또 덧바르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몸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새살이 돋듯이 마음의 상처도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되고 오히려 그로 인해 보다 의연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지난 10년간 두 배로 늘었으며 현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혹자는 극단적으로 현대인을 자살을 실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부류로 나누기도 한다.
특별히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크리스천조차 자살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중요 사안이다.
고전 철학인 스토아 철학이나 향락주의에서는 자살을 변호했다. 오히려 ‘삶의 구속으로부터의 용기 있는 탈출(an honorable exist out of life)’로 치켜세울 정도였다. 힌두교나 불교에서도 역시 자살은 ‘카르마(karma)’나 윤회의 바퀴를 속히 회전시키는 촉매행위이므로 애써 비난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성경이 보는 관점은 다르다. 구약에서는 사울 왕과 그의 시종(삼상 31:1∼6),이스라엘의 왕 시므리(왕상 16:15∼19), 압살롬의 지혜자인 아히도벨(삼하 17:23) 등이 자살했고,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마 27:3·5, 행 1:18)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탐욕과 증오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상실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마음은 평안할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믿음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인생의 주인을 떠났으니 그 마음의 불안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클 것인가. 마치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잠들었던 아기가 깨어났을 때의 그 불안함과 두려움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단의 가장 전통적인 공격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이 아닌 두려움 충만이 된 성도들은 문제나 상황을 부풀려 보게 되면서 스스로 주눅이 들고 결국 자멸하고 만다.
성경 어디에도 자살을 미화하거나 용인하는 말씀은 없다. 기독교가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진리의 말씀에 서있기 때문이다. 시편 36편 9절에도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삶을 이제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아픈 일이 있는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면초과의 상황에 있는가? 그렇다면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보라. 산을 향해 눈을 들라. 천지 지으신 여호와가 그대의 도움이시다(시 121:1∼2) 그 도움 앞에 겸손히 엎드리라. 전능자에게 그대의 상처를 토로하라. 주께서 큰 힘으로 위로하실 것이다. 그 회복된 사랑으로 그대의 주변에 있는, 어쩌면 그대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향기로 다가가라.
정호승님은 시를 이렇게 맺고 있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고. 그대는 향기로운 꽃이다. 사람들이 그 향기로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다.
도원욱 목사(서울 한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