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노효종 선교사 이야기
입력 2010-06-04 17:15
노효종(54) 선교사의 명함에 써 있는 직함을 보면 싱가포르해양선교회(Singapore Seamen's Mission) 항목(Port Chaplain)으로 되어 있다. 장신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에서 목회하다 선교에 뜻을 품고 20여년 전 중국에 갔다. 해남도와 연길, 대만 등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2001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는 매일 싱가포르 항구에 나가 정박한 배에 올라간다. 국내·국외선 상관없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아랍 권을 잇는 교통 요충지. 공항은 물론 항만이 아시아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연 평균 17만5000여척의 선박과 300여만 명의 선원이 싱가포르 항에 입항한다. 노 선교사에게 싱가포르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은 자신의 목회지다. 그 안의 선원들은 양떼다. 스스로 ‘선박교회’ 담임이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에 입항하는 선박은 주로 콘테이너선이다. 이들 콘테이너선에서 일하는 선원들은 보통 10개월에서 12개월을 바다에서 보낸다.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신앙인에게는 영적 재충전이 절실하다. 노 선교사는 배에 올라 선상 예배를 드려주고 상담도 한다. 신자와 비신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그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노 선교사는 중국인 선원들에게 특히 인기다. 그는 선원들에게 설교 테이프와 전도지 및 신앙서적, 신문 등도 전달한다. 정박하는 동안 주일에는 싱가포르 현지 교회로 크리스천 선원들을 데려다 준다. 선원들을 자신 및 돕는 사역자들의 집으로 초대, 잠시나마 가족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선원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노 선교사는 이들 선원들에게 좋은 형, 다정한 친구로 다가갔다.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사랑과 관심을 주고, 또 주다보니 결국 선원들이 마음의 단단한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선원을 대상으로 사역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니 이제는 먼저 그들이 노 선교사를 찾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선원 선교 사역은 결코 쉽지 않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다. 선원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정박했다가 떠나기 때문에 ‘내 양떼’가 될 수 없다. 일반 교회의 선원 선교사역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항상 재정적으로 허덕인다. 노 선교사는 한 때 사역의 한계를 느껴 포기하려고 했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안정된 목회를 해야겠다는 인간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 배를 방문했다. 배에는 비상 연락망이 있었다. 거기에는 급한 일을 당했을 때에 선원들이 연락할 주소들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이 한국 선박회사 관계자들의 전화번호였다. 그런데 거기에 ‘싱가포르에서는 노효종 선교사에게 연락하세요’라며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노 목사는 ‘아, 내가 이곳에서 한 일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선원들의 친구가 되는 것, 긴 항해로 곤고한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한국인과 외국인 구분 없이 그들의 형제로 사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직 ‘주님의 뜻이 통과되는 통로’가 되어 평생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노 선교사와 함께 싱가포르 셈바왕 항만에 정박 중인 한진해운소속 LNG선인 한진라스라판호에 올라가 보았다. 한국과 카타르를 왕래하는 배다. 조현흠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이 노 선교사를 진심으로 반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노 선교사는 선원들을 싱가포르 시내까지 데려다 줬다. 주일에 다시 만날 약속도 했다. 조 선장은 “노 선교사님은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목사님입니다. 우리는 알 수 있어요. 누가 우리를 진짜로 걱정해 주는 지를요. 비신자 선원들도 노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노 선교사를 만나면서 전 세계에 ‘이름 없이, 빛 없이’ 오직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한국인 크리스천들이 많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싱가포르=이태형 i미션라이프부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