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소외당한 ‘루저’… 전 그들에게 애착이 가요”
입력 2010-06-04 17:28
구경미 두 번째 장편 ‘라오라오가 좋아’
올해로 등단 11년째인 소설가 구경미(38)는 2000년대 ‘백수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가다. 소설집 ‘노는 인간’ ‘게으름을 죽여라’, 장편 ‘미안해, 벤자민’ 등을 통해 그는 변두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적을 상실한, 무기력한 일상을 꾸준히 그려냈다.
최근 펴낸 두 번째 장편 ‘라오라오가 좋아’(현대문학)도 주위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구경미표 소설’의 연장선 상에 있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작가는 “정해진 규칙이나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을 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대리만족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은 40대 남성이 국제결혼한 20대 라오스 여성과 함께 도피 행각을 벌이는 이야기를 통해 물신주의 사회에서 소속감을 상실한 채 이방인이 되어버린 인간 군상들을 그려내고 있다.
라오스 건설현장 소장이었던 ‘그’는 현지에서 만난 아메이와 함께 귀국한다. 아메이는 그가 소개한 처남과 한 달 만에 결혼하지만 결혼생활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자 실망한다. 부부 싸움 끝에 아메이는 그를 찾아오고 둘은 함께 마신 낮술에 취해 여관에서 밤을 보낸다.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내몰린 그는 “어디든 데려가 주세요”라는 아메이의 말에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무작정 도피 여행에 나선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갈등이 커지고 아메이는 그의 곁을 떠나 남편에게 돌아간다. 홀로 남게 된 그는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라오스로 가 어부로 살기로 마음 먹고 떠날 채비를 한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는 그가 도피처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는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라오라오’는 그가 라오스에서 아메이와 처음 만났을 때 마신 라오스의 전통술 이름이다.
작가는 “우리는 일탈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여행은 가장 건전한 일탈이니까”라고 말했다. ‘루저’들을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에 대해 그는 “그들에게 애착이 간다. 왠지 그들을 위로하고 보듬어 줘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소설 속의 그 남자도 라오스에 가서 부디 잘 살길 빌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경쟁이 너무 심하고 살기가 빠듯하고 행복도가 낮은 사회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하지 않으면 낙오될 수밖에 없는 사회예요. 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그게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투영된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소시민들의 소심한 복수를 그린 장편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거의 마무리 단계인 신작은 한 문예계간지에 가을호부터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작품을 꾸준히 낸 편인데 당분간은 여행도 자주 다니고, 책도 많이 읽으며 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글=라동철 기자, 사진=최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