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문체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다…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 펴낸 배수아
입력 2010-06-04 17:30
배수아(45) 소설을 두고 한국문학의 난수표라는 말들을 한다. 한국 문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방(外邦)과 소통하기 때문인데 이때 외방은 일종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소설의 경계 너머를 지칭하는 독특한 세계가 곧 이방이라는 것이다.
기존 소설의 미덕이었던 이야기의 기승전결보다는 소설 속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이미지 중심의 낯선 형식은 그가 추구하는 문체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이는 전통적인 작법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일관된 서사를 외면하면서 언어와 정신에 대한 탐색을 극단까지 진전시키는 그의 글들은 난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난수표라는 것이다. 꿈과 환상으로 버무려진 작품들을 따라가다보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원고지 몇 장을 훌쩍 넘기는 복문이 수시로 나타나지만 문장은 밀도가 높고, 유려해 호흡이 가팔라지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21세기 한국 문단의 ‘누브 로망’ 설계자라는 말이 어울릴 성 싶다.
문학평론가 한기욱이 “한국문학은 배수아로 말미암아 긴 호흡의 복문의 가능성이 눈뜨고 낯선 감각의 독특한 표현을 중요한 언어적 자산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얻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최근 출간된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창비)은 이같은 배수아의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홀’(2006)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이 소설집에는 중·단편 8편이 실렸다.
수록작 ‘양의 첫눈’은 오래전 여자 친구 미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편지는 받은 주인공 ‘양’이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는 동안 한 남녀의 모습을 엿보며 과거에 만났던 이들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기억을 통해 무의식적인 감수성의 세계가 아련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저녁이 가까워오고, 햇빛은 거의 온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창백하게 희미할 뿐이고 오리들도 어딘가로 모두 사라지고 바람이 더욱 싸늘해지자 사람들도 담요를 걷고 호숫가를 떠나기 시작했다.”(30쪽)
8년 만에 만나는 미라는 양과 상호관계의 끈을 가졌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여러 고리의 기억을 통과한 양은 그래서 미라가 다가올 때 “마침내 자신이 눈물을 흘릴 시간이 다가왔음”(35쪽)을 깨닫는다.
표제작 ‘올빼미의 없음’은 ‘너’(외르그)의 죽음을 맞닥뜨린 ‘나’의 죽음에 대한 사색과 애도가 특유의 필치로 그려진다. ‘너’의 죽음 앞에서 비탄에 잠긴 ‘나’는 격렬하고 절절한 심경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듣고 있는가 베르너, 늘 그렇듯이 나는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맞은편에서 홀연히 솟아나는 지옥의 정원을 보았고, 사람들은 나에게 외르그가 죽었다고 말하며, 외르그는 이제 앞으로 영원히 없게 되는데, 이 없음이란 무엇인가, 없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없음이란 도대체 왜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145쪽)
‘무종’은 낯선 밤 모형비행기 수집가와 함께 무종의 탑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이어 화자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셋방을 구하러 다닌 경험을 회고하는 이야기 등이 이어지면서 꿈속으로 빠져드는 야릇한 감흥을 보여준다. 끊일듯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긴 복문은 낯선 공간에서 계속 길을 헤매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에서는 꿈과 환상의 시공간이 현실에 중첩되고 기억이 주체를 옮겨다니는 기이한 전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난무하고, 현실과 비현실이 혼합된 세계를 독특한 문체로 빚어낸 그의 소설들은 우리 문단의 새로운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서사를 물려놓은 자리에서 복원해내는 최초의 감각이 늘 경이롭다. 관념과 물리, 사물과 사람에 마음이 닿아 생기는 지점에서 그는 아주 색다른 감각을 틔운다. 그것은 ‘공명하는 감각’이라 이르고 싶다”(소설가 전성태)라거나 “무의식의 접경지대를 탐색하며 의식 중심의 실체론적 사유와 인과론적 시간관을 혁파하는 실험을 더 깊고 치밀하게 수행한다”(문학평론가 한기욱)라고 평가가 그렇다. 배수아를 읽는 것은 한국문학의 전위에 다가가는 것이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