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냐 잔류냐… 시름 깊은 개성공단 기업
입력 2010-06-03 21:16
남북 대치 상황서 볼모 잡힌 신세
개성공단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2004년 말 첫 생산에 들어간 지 6년 만이다. 현재로선 미래를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3000만 달러 안팎이다. 개성공단이 달러박스인 셈이다. 한푼이 아쉬운 북한으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남북경협 및 화해의 상징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그동안 투자한 돈을 날릴 수 있고, 무엇보다 현지 체류 인력 억류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남북 모두 마지막 카드는 빼들고 있지 않지만 사실상 볼모가 된 입주기업들은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입주기업들은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입주기업들은 부도를 피할 수 없고, 개성공단도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체류 인원 제한조치 풀어 달라=개성공단기업협회는 3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남북 정부를 믿고 사업을 시작한 만큼 안정적인 사업 활동 보장을 위해 우선 체류인원 제한 조치부터 해제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건의 대응 조치로 개성공단 상시 체류 인원을 지난달 24일부터 50% 수준으로 제한해 왔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40여명의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절반 수준의 인력으로는 정상적인 제품 생산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 남북관계 경색 이후 주문이 뚝 끊기면서 업체들은 고사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배해동 협회장은 “입주기업은 대부분 임가공 업체들로 한창 가을·겨울 상품을 주문받아 생산에 들어가야 할 때지만 현재 주문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시기에 맞춰 납품하려면 최소한 통행은 보장돼야 하는데 그것마저 불확실해 바이어들이 다른 업체를 찾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주문이 줄면서 부분 휴무에 들어갔다. 정부 당국은 최소 2개 업체 이상이 부분 휴업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휴무 기업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일부는 “신변 안전을 고려해 개성공단 체류 인력을 축소한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존 조치를 철회하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고성이 오갔다.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도 조만간 두 동강 날 것으로 보인다. 현 집행부와 이해를 달리하는 기업들이 새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N사 관계자는 “정부에 대북 심리전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 달라고 수차례 협회에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며 “협회가 정부 눈치를 보느라 회원사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개성공단의 미래…철수냐 잔류냐=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개성공단 업체들의 피해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철수도, 잔류도 쉽지 않다. 그냥 두자니 개성공단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너무 커 손해가 얼마나 확대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개성공단에서 철수해 중국 등 다른 곳으로 사업장을 옮기는 것도 여의치 않다. 자진 철수할 경우 경협 보험으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없다. 게다가 개성공단을 관리하는 북측 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지난달 30일 공단 내 남측 기업들의 설비 반출을 원칙적으로 불허한다고 밝혀 투자한 설비도 전부 놔두고 와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 모두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개성공단 폐쇄는 곧 한반도 리스크 심화를 의미한다. 최근 남북 무력충돌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주가와 환율이 요동쳤는데 남북관계의 완충지대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입주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북한도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임금 인상 문제가 불거지거나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여러 차례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했음에도 현재까지 공장 가동이 멈춘 적은 없다. 북한은 지난달 개성공단 내 남측 기업의 설비 반출을 불허하면서도 개성공단 건설을 위한 노력은 계속한다고 밝혀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 노력하고 있는 만큼 어느 순간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