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대북공작원 ‘흑금성’ 北에 군사기밀 빼돌려

입력 2010-06-04 00:36

국가정보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의 대북공작원이었던 ‘흑금성’이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기다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진한)와 국정원은 3일 군사기밀을 빼내 북한 공작원에게 넘긴 혐의(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로 대북공작원 박모씨와 손모씨를 구속했다.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군 정보기관 장교 출신인 박씨는 ‘흑금성’이라는 공작명을 가진 안기부의 대북공작원이었다.

박씨는 2005~2007년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공작금을 받고 군사기밀인 한국군 작전교리, 야전교본 등을 넘겨준 혐의다. 박씨를 포섭한 공작원은 대외적으로는 대남 경제협력 창구인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소속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지난해 2월 정찰총국으로 편입된 옛 작전부에서 공작 활동을 해왔다. 검찰은 박씨가 북한에 넘긴 군 교리와 교범에 각급 부대별 운용 및 편성 계획, 작전 활동 등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박씨가 넘긴 기밀이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관계자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군 관계자 등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박씨는 1997년 대선 직전 ‘북풍(北風) 사건’ 당시 대북사업을 하는 광고기획사에 위장 취업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신원이 노출됐다. 북풍 사건이란 당시 안기부가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사건이다. 대선 이후 수사가 진행되던 중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의 접촉 내용을 담은 기밀정보가 폭로됐는데 이 과정에서 흑금성이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일로 공작원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박씨는 베이징에 체류하며 대북사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났을 정도로 북한에서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씨가 방북하면 왕별을 단 벤츠 승용차가 제공되고, 금강산을 갈 때 전용 헬기가 동원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와 함께 구속된 손씨는 장교 출신으로 2005년 군 통신장비 관련 내용을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하고 2008년에는 베이징에서 공작원과 통신 중계기 사업의 대북 진출을 협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씨는 전역 후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며 지난달 퇴직할 때까지 통신장비 설계도 등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