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성장통 앓는 중국

입력 2010-06-03 18:51


“닭보다 먼저 일어나고, 당나귀보다 일을 많이 하며, 사는 게 말보다 힘들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왕(王)모씨는 3일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택시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새벽녘엔 차에서 잠을 잔 뒤 다시 운전을 한다고 했다.

얼마 전 성매매 단속으로 문을 닫은 베이징의 초호화 룸살롱 ‘천상인간(天上人間)’은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객장이 1만2000㎡에 달하고 인테리어에 1억6000만 위안(282억원)을 들인 이곳엔 중국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드나들었다. 접대부의 기본 팁은 최저 500위안(8만7700원)이고, 성매매는 1만 위안(177만원)에 달했다.

중국 남방일보는 최근 평론에서 중국사회에 대해 “부유한 사람은 기름이 좔좔 흐를 정도이고, 가난한 사람은 털이 빠질 정도(富得流油 窮的掉毛)”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1위안으로 한 끼를 때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만 위안짜리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중국의 빈부격차는 위험수위에 접어들었다. 중국경제체제개혁기금회 국민경제연구소 왕샤오루(王小魯) 부소장은 중국 투자자보(投資者報)와의 인터뷰에서 “1988년 상·하위 10% 간 소득격차가 2007년 23배로 늘었다는 공식통계가 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입을 포함하면 실제 차이는 55배가량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지난해 0.47로 나타나 위험수위인 0.4를 훌쩍 뛰어넘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사회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한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고 법원에선 총기난사 사건도 발생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근로자들이 계속 투신자살하고, 시위와 파업도 잦아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유치원에 난입해 흉기를 휘둘러 원생과 교사 등 32명을 다치게 한 쉬위위안(徐玉元)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천상인간 등 베이징의 룸살롱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1000여명을 형사 처벌하기도 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 3월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회의 폐막식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는 여러 불공평한 현상이 존재한다”면서 “특히 수입분배 불공평과 사법 불공평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4월 말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는 올해 소득분배 문제 개선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사회 불평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커진 ‘파이’를 부유층과 권력층이 독식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철저한 유착관계로 각종 제도적 허점과 편법을 이용,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건 당연지사. 반면 다수의 빈곤층은 먹고살기 급급하다.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갖고 있다. 이들의 불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언제 터질지 모를 지경이라는 경고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은 경제대국이 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은 도시가 11개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빈부격차 등 사회 불평등도 갈수록 심화돼 심각한 ‘성장통(痛)’을 앓고 있다. 당장 근본적인 치유가 없다면 지속 성장과 미래발전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민대 법률사회학연구소 저우샤오정(周孝正) 소장은 “학생들을 상대로 한 흉기난동 사건이나 근로자들의 자살사건 등은 모두 사회 불공평에 따른 것”이라며 “조속히 사회병리현상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현 지도부는 조화사회 건설을 주창하고 있다. 중국이 근본적인 대책마련으로 사회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사회를 이룩할지 주목된다.

베이징=오종석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