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입력 2010-06-04 00:16
유쾌하고 거침없는 남자,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뻡(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처음엔 무슨 저런 유치한 광고가 있나 싶었다. ‘교묘하게 낚는 구나’ 반감마저 들었다. 한데 이상했다. 지상파에서, 케이블 방송에서 우연히 몇 차례 광고를 본 뒤로는 특유의 그 말투가 잊혀지지 않았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너무 좋아 죽겠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어 미치고 팔짝 뛰겠다”고 하소연하는 중년 남성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김영식(59) 천호식품 회장.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역삼동 천호빌딩 6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엘리베이터 안과 복도엔 온통 ‘welcome! 국민의 소리, 국민일보 권지혜 기자님, 반갑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천호식품에서 좋은 추억 만들고 가시길 바랍니다’는 환영문구가 붙어있었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역시 예사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임직원 수 300명에 지난해 매출 800억원. 1984년 설립돼 170여종의 건강식품을 만들고 있는 중소기업 회장. 제품 광고하려고 비행기 안에서 홍보전단 돌리고 공항 비즈니스센터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자사 홈페이지로 바꿔놓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10미터만 더 뛰어봐!’라는 책도 썼다. 2008년 7월 출시된 이 책의 인세와 강연료는 모두 출산장려지원금으로 쓰인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남자한테 뭐가 좋은 건가요?” 그는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며 한바탕 웃고는 “말하기 쑥스러운데…”라며 입을 열었다.
1998년. 무리한 사업 확장과 외환위기 여파로 파산지경에 몰린 김 회장은 어떻게든 재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힘들었다.
“침대에서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데 시쳇말로 터널에서 시동이 꺼져버리더라고요.”
자존심이 상했다. 여기저기 남자한테 좋다는 식품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남자한텐 산수유가 최고다. 장기복용하면 혈액순환이 잘 돼 부부금슬이 저절로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먹어보니 효과가 있었다. 이듬해 산수유환을 개발해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다. “보름 먹고 나니 확 달라지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무렵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2000년 12월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던 조지 W 부시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대통령이나 다름없다. 세계를 잘 이끌어 가려면 정력이 좋아야 한다. 정력 증강에는 한국 산수유가 그만이다. 산수유로 만든 제품을 선물로 보내니 한번 드셔보라’는 내용과 함께 제품을 동봉했다.
3개월 뒤 거짓말처럼 부시 대통령 부부의 친필 사인이 담긴 답장이 왔다. “답장을 받아 본 순간 ‘이걸 광고로 활용하면 대박 나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더라고요.” 예상은 적중했다. 산수유환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산수유환 팔아서 역삼동 사옥을 지었다”고 했다.
한술 더 떠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때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메일로 초청장을 보냈다.
“작은 정원이 있는 2층집에서 대통령님 내외분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제 아내는 요리솜씨가 뛰어나기에 대통령님 내외분의 미각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구수한 된장국에 쌀밥, 한국식 핫소스가 어우러진 장어구이를 드시면서 와인 한잔 곁들이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영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정치나 외교 등의 지식도 별로 없지만 사업과 골프 그리고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한국남자입니다. 대통령님과의 멋진 만남을 꿈꾸겠습니다!”
당연히 부시 대통령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백악관에서 정중하고 완곡한 어조로 거절을 알리는 답장을 보내왔다.
김 회장은 “나는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일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그냥, 재미있었다. 세계 최고 강대국 지도자에게 당당하게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괴짜를 넘어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1월, 산수유 함유량을 49%에서 87.5%로 늘린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했다. 광고를 만들어야했다. 광고 카피를 어떻게 만들까?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산수유 말이야, 남자한테 정말 좋잖아. 그런데 표현할 방법도 없고,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그때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내가 한 말로 카피를 만들면 어떨까?!’ 촌스럽지만 눈길을 끄는 광고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 회장의 주변사람들은 그를 ‘뚝심대장’이라고 부른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체면과 자존심 버리고 몸으로 때우면서 어떻게든 해낸다. 그는 ‘(내가 그걸) 어떻게…’란 말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한, 성공과 좌절을 숱하게 경험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자신만만함이 몸에 배 있다.
84년 천호식품을 설립한 뒤 ‘달팽이엑기스’로 대박을 터뜨린 김 회장은 서바이벌 게임, 찜질방, 황토방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돈이 몰렸다. 그러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식품에 첨가되는 기능성 원료들을 농심, 해태 등 유명 식품회사에 납품했는데 졸지에 중단 통보를 받았다. 찜질방과 황토방 사업 가맹자들이 여기저기서 파산해 계약이 해지됐다. 하청업체들에 발행해준 어음은 만기가 돼 무더기로 돌아왔다. 은행에서 회사와 집에 경매 통보가 날아왔다.
“정말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200명이던 직원은 다 떠나서 4명만 달랑 남고 빚만 20억원이 넘었어요. 서초동 사무실이 9층이었는데 혼자 소주를 마시다 확 뛰어내려 자살할 생각도 했었지요.”
98년 설. 경남 고성에 내려가 아버지에게 세배를 했다. 아버지는 오뚝이를 선물로 줬다고 한다.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오뚝이처럼 일어나라’는 채찍처럼 느껴졌다.
오뚝이를 가슴에 품고 다짐했다. ‘아버지, 영식이는 기필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그해 3월 어음 막을 돈 2000만원이 급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돈을 빌리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다시 아버지를 찾아갔다.
“찾아가기는 했는데 도무지 입을 뗄 수 없어 큰방과 작은방을 왔다 갔다 하다 그냥 돌아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여기까지 큰맘 먹고 왔는데 어떻게 그냥 돌아가느냐’고 하더라고요. 용기를 내 말씀 드렸어요.”
사정을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다음날 바로 2000만원을 송금했다. 김 회장은 그 돈으로 마지막으로 돌아온 어음을 막았다. 다섯 형제가 준 용돈을 2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돈이었다.
그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공장을 둘러보면서 당장 팔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강화사자발쑥진액’이 눈에 들어왔다. 제품 박스와 파우치 등의 재고가 많이 남아있어 새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확실한 가격파괴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한 그는 18만원에 팔던 60개들이 한 박스를 5만원에 내놨다. 직원들은 ‘말도 안 된다’며 만류했다. 일기장과 수첩, 명함,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온통 ‘쑥을 팔자’고 도배해 놨다. 광고전단을 만들어야 했는데 돈이 없었다. 아내가 선물해준 반지를 신사동 전당포에 맡기고 130만원을 빌렸다. 이 돈으로 전단지를 만들고 남은 돈은 사무실 운영 경비에 보탰다.
“오전 6시30분 여관에서 나와 서울 강남역 지하도 입구로 출근해요. 8시30분까지 전단을 돌리고 사무실로 가서 일을 본 다음에 퇴근할 때는 지하철을 타고 첫 칸에서 마지막 칸까지 선반에 전단을 올려놓고 다녔어요. 식당, 골목길 전봇대, 승용차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곳엔 모두 쑥 전단을 꽂아놨었어요.” 당시 그의 저녁은 소주 한 병에 600원짜리 소시지였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쑥 이야기를 꺼냈다. 비행기 안에서도 전단을 돌렸다. 승무원이 “고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만류했다. 하지만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김 회장은 “이 전단 안 뿌리면 나 죽어요. 이 비행기 못 탑니다. 쑥이 얼마나 좋습니까? 다음에 돈 벌어서 내가 한 박스 선물 할게요”라며 막무가내였다.
‘쑥, 쑥, 쑥 자로 끝나는 말은~ 이쑥 저쑥 들쑥 날쑥’이라는 정체모를 주제가도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 여기저기서 ‘김영식이 미쳤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10년째 천호식품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탤런트 이순재씨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시절 만난 이씨에게 다짜고짜 쑥의 효능을 설명한 뒤 모델이 돼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돈이 없으니 모델료는 나중에 벌어서 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이씨는 기꺼이 공짜 모델이 돼줬다.
98년 1월 1100만원이던 매출은 99년 1월 5억원으로 50배 가량 뛰었다. 이후 ‘사슴한마리’ ‘산수유환’ 등 히트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2004년 연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2008년 7월 출간한 자전적 자기계발서 ‘10미터만 더 뛰어봐’ 인세와 강연료 수입 전액은 출산지원장려금으로 쓰인다.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셋째 자녀를 출산한 90여명에게 각각 200만원씩 지원했다. 회사 직원이 셋째 자녀를 출산하면 1220만원을 준다. 일시불로 500만원, 24개월간 매월 30만원씩이다. 지난해에는 어려운 이웃 사연을 김 회장이 운영하는 카페 게시판에 올리면 매월 20명을 선정해 1인당 50만원씩 지원하기도 했다.
오는 11월엔 상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김 회장의 꿈은 ‘대한민국 부자 만들기’다. “직장인이 통장에 5억원 정도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고 기분 좋습니까. 우리 직원들부터라도 그런 기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산수유 광고 후속편은 없냐고 물었다.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2탄을 준비하고 있다. 멘트도 정했다. ‘산수유,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확 말해버릴까?”. 김영식 정말 유쾌하고 거침없는 남자다.
글=권지혜 기자, 사진=김민회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