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웃어야 산다
입력 2010-06-03 18:09
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에 따라 웃음과 눈물이 교차할 테지만, 아직 철거되지 않은 선거벽보 속에서 후보들은 모두가 웃고 있다. 부드러운 인상으로 민심을 잡고 싶은 이미지 정치의 시대, 고루하고 딱딱한 표정은 인기가 없다. 남자 후보의 경우 가장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는 2대 8 가르마는 여전한 대세. 그러나 정석처럼 통하던 흰색 셔츠에 밝은 색 타이라는 교과서적 복장을 포기한 후보 또한 많아졌다.
선거벽보의 이미지는 그나마 좀 얌전한 편이다. 후보들이 공식적으로 올린 인터넷상의 증명사진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살인미소에 가까울 만큼 활짝 웃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치 유명 점집을 찾듯이 인물사진을 찍는 사진관이나 사진가들이 선거철 특수를 누린다. 당선자를 많이 배출한 사진가일수록 당연히 인기가 높다.
그러나 사진 속 상황으로만 국한시키자면, 정치인들은 오직 후보 시절에만 활짝 웃는다. 실제로 우리가 아이콘처럼 기억하는 국내외 정치인의 인물사진 중에 밝은 표정은 드문 편이다. 인물사진의 거장 요세프 카쉬는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저돌적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처칠이 손에 들고 있던 시가를 빼앗아 화를 내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른 일화로 유명하다.
오늘날보다도 더 강한 이미지 정치의 시대였던 박정희 정권 시절, 우리가 기억하는 대통령은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개발에 앞장서는 군인이었다. 후보들은 각자의 경력 혹은 신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배우처럼 연출하지만, 일단 권력이 생기면 카메라 앞에서도 최대한 개성 있고 강한 인상으로 남고 싶어 한다.
이가 보여서도 안 되고 귀와 이마가 가려져도 안 되는 여권용 증명사진이 아닌 바에야 인물사진치고 객관적인 사진은 사실 없는 셈이다. 우리는 사진 속 인물의 복장과 외모가 그들의 신분까지도 드러내 준다고 믿지만 사실 점퍼 차림을 한 정치인이라고 해서 일을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정치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혹은 잘 찍은 인물사진 한 장은 그저 연출일 뿐이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5일까지 열리는 천경우 사진작가의 ‘여왕 되기’ 시리즈는 이러한 초상사진의 허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디오와 사진을 겸한 이 퍼포먼스에서는 스스로가 여왕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덴마크 여성들이 여왕처럼 차려입고서 각자의 나이만큼을 분(分)으로 환산한 시간 동안 닮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설명한다. 성격 외모 철학 등 스스로 여왕과 같다고 생각하는 대목도 제각각이고 나이와 하는 일도 모두 다르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들여다보면 전시장에는 온통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덴마크 여왕의 사진만 가득할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두 여왕의 환영일 뿐이다.
선거 개표가 끝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미소의 후보들은, 모두가 여왕이 되고 싶은 시대에 여전히 왕이 아닌 심부름꾼임을 외치고 있다. 적어도 사진 속에서만큼은.
<포토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