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때 北이 응원? 뻥이에요”

입력 2010-06-03 18:16


인터뷰요? 안 합니다. 기자들한테 뒤통수 엄청 맞았어요. 제가 말하면 입맛대로 골라 쓸 거 아닙니까. 허허, 아니라고 약속한 기자 많지만 번번이 그랬어요. 기자 말 안 믿습니다. 네? 학교 선배라고요? 흠… 저요? 03학번인데요. 다섯 학번 위라고요? 허, 거참….

北 대남방송요원 출신 첫 월남자

맞습니다. 주성일. 82년생이고요. 2002년 2월 19일, 그러니까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방한 중이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도라산역(경의선 최북단 역) 방문하기 하루 전날 도라산역을 통해 귀순했어요. 그때 남측 반응이 쌩했지요(별로 반기지 않았다는 의미)….

북에서 직책은 대남방송요원이었습니다. 임무는 대남방송 중계하고 대북방송 저지하고 그런 겁니다. 아, 직접 대남방송을 만든 건 아니고요. 인민군 총정치국 지시 받는 군단 적공작부서에서 대남방송을 만들면 휴전선 부근에서 단순히 중계만 하는 거였죠.

대북방송 저지하는 법요? 전파방해도 하긴 하는데, 그냥 같이 트는 거죠. 남측이 ‘자유의 소리’ 방송을 확성기로 크게 틀잖아요. 그때 우리도 같이 방송을 틀면 안 들립니다. 남북 스피커가 불과 1∼2㎞ 떨어져 있어요. 서로 틀어대면 귀청 찢어진다니까요. 이런 걸 제압방송이라고 해요.

사실 대북방송 10번 하면 한번도 제대로 제압 못해요. 제압이 가능하면 (이번에 북한이) 조준사격 얘기를 했겠습니까. 전력 사정이 안 좋고, 방송장비가 일제인데 고장 나면 수리도 어렵고. 대북방송 없는 시간대에 대남방송 트는 정도죠. 검열 나올 때만 하는 척해요. 제가 1997년 입대할 때부터 그랬어요.

정확히 민경대대 서부전선 지상골 방송국 방송조장이었어요. 민경대대는 민사행정경찰대대의 줄임말이죠. 하하하, 경찰 아니에요. 군인이에요. 휴전선 따라 9개 민경대대가 있고….

예? 당연히 그렇죠. 적과 마주하는 최전방인데 아무나 보내겠어요? 골라서 보내지. 남한은 전방에 안 가려고 한다는데, 북한은 달라요. 혜택이 엄청나요. 인민군은 머리를 빡빡 미는데 우리는 기를 수 있어요. 휴가나 후방견학도 (원칙적으로) 가능했어요. 장교대학, 사회대학 진학도 보장했고요. 제대 후 당 간부로도 우선 임용됐죠. 이런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발급한 민경대우증에 명시돼 있어요.

난 그냥 운이 좋았어요. 아버지가 공군이어서 군 문화를 잘 알죠. 훈련소에서 눈에 띄었나 봐요. 민경대대 가보니 정말 다들 ‘빽’이 으리으리했어요. 간부 집 아이들이 다 지망했죠.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은 근무환경이 안 좋아요. 서부전선이 최고예요. 오려는 다툼이 진짜 치열하고, 그 중에도 방송 담당은 정말 편해서 모두 하고 싶어 했어요.

당연히 처음 가보는 곳이었죠. 전방은 아무나 못 가요. 저요? 평안도에서 태어나 함경남도에서 자랐어요. 막연하게 전방은 남측 도발이 잦아 매일 총격전 벌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죠. 후방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해요. 입대할 때 ‘싸우러 가자’고 다짐했었죠.

처음 받아든 남한 전단지

생생히 기억나죠. ‘김정일의 기쁨조 실태’였어요. 민경대대 훈련소에 있을 때였는데, 며칠에 한번씩 남측에서 날아온 전단지가 쫙 깔렸어요. 태어나서 처음 본 내용이었죠. 사진도 실렸는데… 정신이 휘청거리고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와 흥분이 막 올라왔죠. 못 읽은 척 태연히 줍느라 힘들었어요. 다른 동기생들도 당황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충격은 말로 다 못하죠.

그건 아니죠. 처음부터 그걸 어떻게 믿어요. 정신적 충격이라는 건, ‘미국과 남조선은 우리(북한)에게 벌벌 떤다’고 배웠는데, 저런 방송을 하고 전단지 뿌리는 놈들을 왜 격파하지 못하나, 이런 게 혼란스러운 거죠.

답답한 말씀 하시네. 말 못하죠. 그걸 누구랑 상의하겠어요. 동기생 3명 중 한 명은 군 보위사령부 정보원이었어요. 혼자 끙끙 앓으면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죠. 1년쯤 지나니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됐어요.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정리가 되죠. 보세요, 거기 있으면 보는 게 전단지고, 듣는 게 대북방송이에요. 13년간 복무하는데 휴가는커녕 외출 한번 없이 비무장지대에서만 지내요. 자연스레 이건 사실이겠다, 이건 과장이겠다, 가려지죠.

제가 있던 서부전선에서 자유로가 보여요. 대북방송 듣다보면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 자동차는 몇 위, 구체적 숫자가 나와요. 자동차가 1000만대라기에 ‘거짓말이다’ 생각했죠. 근데 자유로 보니까 차가 끊이질 않아요. 저렇게 많을 정도면 저 뉴스가 맞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죠. 북측 정치장교들은 “자유로는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고속도로다. 대전 내려갈 때도 저 고속도로를 타야만 갈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걸 믿을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요.

참나, 저만 유별난 놈이 아니라니까요. 우리 민경은요, 진짜 빨갱이 자식들이에요. 저도 싸우고 싶어서 군에 왔단 말입니다. 다른 애들도 그랬어요. 근데 3년 지나니까 ‘과연 전투가 벌어졌을 때 싸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동기생에게 물어보니 답을 피해요. 예전 같았으면 “싸우다 죽겠다”고 했을 텐데.



대북방송 효과는 엄청나지만

인정해요. 효과는 엄청나요. 여기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변용관이라고 판문점 대표부 장교가 남으로 귀순한 일이 있었어요. 큰 충격이었죠. 우리보다 더 대우 받는 애들이거든요. 그 사람이 월남해서 대북방송에 나오더라고요.

그러면 매도해야 하는데 고참들이 그러질 않았어요. 군복무 1년쯤 됐을 때라 친한 고참이 있었는데 “진짜 똑똑한 사람이야. 장교대학 수석 졸업한 사람이야” 이래요. 이해가 안 됐죠. 근데 저도 고참 되니까 후임들에게 월남한 사람을 좋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무슨 심리인지….

아, 그렇죠, 맞아요. 동경. 내가 맘속으로 하고 싶던 걸 대신 해낸 사람이 멋져 보이는 거죠. 난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으니까….

정말 민감해하죠. 민경 출신들이 다 사회지도층이 돼요. 그런 애들이 13년 동안 (비무장지대에서) 남한 교육을 받고 오니까… 환장하는 거죠.

자꾸 그런 식으로 물어보지 말라니까요. 대북방송 효과 좋죠. 하지만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북한 주민을 우롱하는 거다, 이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방송을 활용하면 과장과 거짓을 쓸 수밖에 없어요. 할 거면 담백하게 사실대로만 하라 이겁니다.

사례야 많죠. 남한 와서 대북방송의 진실을 알고 엄청 실망했어요. 휴전선 부근에서 근무하다 남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었어요. 대북방송에 출연하고 전단지에 결혼사진도 실리고, 자가용 몰고 출근하는 사진도 실리고.

남에 와서 그 사람 만나보니 부적응 탈북자더라고요. 오랫동안 직업도 없다가 폭행 혐의로 교도소까지 갔어요. 대북방송엔 돈 받고 출연한 거였더라고요. 진짜 잘 살고 있는 탈북자 찾으면 되는데 그런 노력을 안 하는 거죠. 북한도 월북자를 대남방송에 출연시켜요. 토씨 하나까지 다 써주고 읽으라고 하죠. 그것과 뭐가 달라요? 자유대한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뇨, 이번에 새로 시작한 대북방송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들어보나 마나예요. 2004년 대북방송 중단 전에 1년간 매주 한두 번씩 프로그램 만드는 데 조언도 하고 그랬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요. 말도 안 되는 방식이죠. 전문성도 없고, 조사도 대충대충 해요.

거짓말로 자기들 방송 홍보도 한다니까요. 대북방송을 오랫동안 진행한 아나운서가 2004년쯤 신문 인터뷰한 걸 보니까 “2002년 월드컵 때 한국팀이 골 넣으면 북쪽에서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말하던데, 그게 말이 됩니까. 사실이라면 집단 총살감이에요. 나는 13년 동안 동료들과 대북방송에 대해선 한마디도 못했어요. 들려도 안 들리는 거예요. 근데 남한이 골 넣었다고 환호성을 질러요? 북한 경기라도 환호 못해요.

아니, 반대하는 건 아니고요. 방송을 다시 하는 건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안 돼요. 진정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어야죠. 정치적 목적으로 방송하면 거짓과 과장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글·사진=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