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한국적 미학이란?… ‘22명의 예술가, 시대와 통하다’
입력 2010-06-03 17:37
22명의 예술가, 시대와 통하다/전영백 엮음/궁리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은 어떻게 이어져 왔나?’, ‘미술에서의 한국성, 또는 한국적 미학이란 무엇인가?’
전영백(45) 홍익대 미술대학 예술학부 교수가 엮은 이 책은 우리 현대미술에 대한 이 두 가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홍익대 미술사학과와 예술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지난해 봄 진행한 수업의 결과물이다. 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10년 단위로 한국 현대미술의 특징을 정리하면서 시대별로 대표 작가 5∼6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곁들였다. 인터뷰 대상은 이승택(78) 김구림(74) 송수남(72) 전수천(63) 임옥상(60) 구본창(57) 유근택(45) 정연두(41) 등 22명이다. 70대 원로부터 40대 중견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온 작가들이 총 망라돼 있다.
시대별로 미술계의 흐름을 점검하고, 주요 작가들의 개별 인터뷰를 덧붙여 우리 현대미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그 망라의 그물망이다. 앞부분의 미술사는 현대미술을 전공한 박사과정 학생들이 집필했고, 인터뷰는 석사과정 학생들이 진행했다.
우리 현대미술은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단색조 회화가 화단을 주도했고, 극사실주의 경향도 나타났다. 80년대는 모더니즘에 바탕을 둔 제도미술과 민중미술의 대립 및 갈등이 첨예했던 시기였다. 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본격화로 사회적 이데올로기 대립이 완화되면서 젊은 작가들의 개별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00년대에는 매체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미적 표현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한국적 미학’에 대한 작가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퍼포먼스 작가로 알려진 윤진섭(55) 호남대 예술대 교수는 ‘한국성’이란 “옷에 비해 너무 튀면 촌스러우며, 또 너무 눈에 안 띄면 존재감이 없기에 신어야 하되,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하는” ‘양말’과 같은 것이라 정의한다. 서승원(69)에게 한국성은 ‘적막한 산사의 인경소리’이고, ‘노을녁 다듬이의 도닥도닥 찍는 소리’이고, ‘앞마당 장독가에 배어오르는 구수하고 영글은 된장, 고추장 내음’이다.
김구림은 작품의 재료와 소재가 무엇이든,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작가의 미학적 사상과 철학이 한국적이라면 그것이 올바른 한국성이라고 말한다. 반면 임옥상은 삶의 중요한 현장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며 ‘한국성’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보인다. 대표적인 행위미술가인 성능경(66)도 “한국적 또는 한국성은 관심 없고, 나의 실존에만 관심 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김주현(45)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민족의 고유성을 익히고 주체의식을 갖추는 것은 그야말로 작가가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기본 조건”이라며 한국성의 구현을 강조했다.
이렇듯 엮은이는 현대미술에서의 한국성이란 개념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미술의 영역은 개별성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지만, 개인적 특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문화적 맥락은 필연적이고 문화적 뿌리 없는 개인적 독창성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한국적인 것을 만국의 공통된 미감(美感)에 호소할 수 있을 때 가장 ‘한국스러워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의 기획의도를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무엇보다도 세대간의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대간 대화, 종적 소통이 소홀한 곳에서는 미술이 가벼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 미술의 윗세대와 지금 현재 한국 미술을 이끌고 있는 중견, 그리고 실험적 창의성이 돋보이는 신진 사이에 연결의 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한국미술의 내일을 이어갈 젊은 작가들에게 치열한 작업의 현장을 보여주고 ‘시대를 담는 작업’을 환기시키며, 오늘의 시대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체화시키도록 종용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밝혔다.
일견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당대를 헤치며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구축한 주요 작가들이 펼쳐놓는 생생한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미적 기준을 가늠하는데 큰 보탬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